時事論壇/時流談論

[한삼희의 환경칼럼] '4만 기업 오염구제法' 사고 더 부를라

바람아님 2014. 11. 29. 14:16

(출처-조선일보 2014.11.29 한삼희 논설위원)


한삼희 논설위원'환경오염피해 구제법안(案)'이라는 것이 국회에 올라 있다. 
2012년 9월 구미 불산 사고를 계기로 등장한 법안이다. 당시 5명이 죽고 1만명이 치료를 받았다. 
사고를 낸 휴브글로벌이란 기업엔 피해 배상(賠償) 능력이 없어 정부가 예비비로 554억원을 투입했다.

그 뒤 환경부는 기업들을 환경 사고(事故) 보험에 들게 하면 사고의 사후 수습이 가능하다고 보고 
법안을 구상했다. 피해 배상 부담을 유해 물질 취급 기업들에 분산시키자는 취지다. 환경오염 사고 
후엔 기업과 피해자들 사이에 배상 금액을 놓고 지루한 소송(訴訟)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법안엔 사고의 인과관계가 어지간히 확인됐다면 보험을 통해 신속히 피해를 배상한다는 
규정도 집어넣었다. 가해 기업이 누군지 불확실하거나 해당 기업이 사고 후 파산(破産)한 경우에도 
보험회사와 정부의 출연금으로 만든 기금에서 배상해준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한 법안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의문이 생긴다. 
무엇보다 기업의 과실·위법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배상 한도를 최고 2000억원으로 제한한 부분이 납득되지 않았다. 
업종·규모에 따라 배상 한도를 정해놓고 그 한도를 넘는 피해는 기금에서 지불한다는 것이다. 
휴브글로벌은 직원 7명의 영세기업인데도 수백억원짜리 사고를 냈다. 
국내 대규모 화학단지 공장 중엔 1960~70년대에 지어 노후한 시설이 적지 않다. 
자칫 사고가 나면 수천억~수조원대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 
과실·위법은 드러나기보다 숨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대기업 화학회사들은 법안을 반길 것이다. 사고 배상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기업 파산을 막는 일보다 10배, 100배 더 중요한 것은 파멸적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의 유독가스 사고 때는 8000명이 사망했다. 
배상 책임에 한도를 두면 기업들의 '사고 예방' 의지가 약해지진 않을까.

교통사고는 종합보험만 들면 웬만한 배상은 다 책임져준다. 
종합보험 제도는 운전자들 경각심을 둔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 
환경 사고 역시 배상 책임을 분산시키면 기업들에 모럴 해저드가 올 수 있다.

환경오염 사고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길래 이런 제도를 만들려는 것일까. 
환경부가 법원 판례를 뒤져봤더니 30여년간 환경 시설 관련 피해배상 소송이 300건쯤 검색됐다고 한다. 
그중 구미 불산 사고 같은 경우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환경부는 많으면 4만개 정도 기업을 보험 가입 대상으로 본다고 했다.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고 수습을 위해 4만개 회사를 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제도 유지 비용이 상당히 들 것이다.

교통사고는 사고 발생과 피해 규모 통계가 축적돼 있지만 환경 사고는 드물게 일어난다. 
게다가 수만개 기업의 시설·공정·원료는 제각각이다. 개별 기업의 보험료율을 어떻게 정한다는 건지 알 수 없다. 
환경부는 시행령·시행규칙을 통해 업종·규모에 따라 요율을 정하겠다고 한다. 
그런 것이 다 공무원들 권한(權限)이 된다.

관련 제도를 유지하고 기금을 관리하려면 무슨 기구(機構)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이 법안을 만들면서 퇴직 후 가서 앉을 자리를 머리에 떠올리진 않았는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