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1.29 오태진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1992년 4월 미국 LA에 폭동 터지고 이틀 뒤 아침 LA 공항에 내렸다.
마중 나온 친구 차를 타고 곧장 센추리 대로로 나섰다. 흑인촌 사우스센트럴을 동서로 가로질렀다.
지붕도 안 남기고 타버린 집들이 이어졌다. 불길 날름대는 곳도 많다.
집 앞 치우던 흑인에게 말을 걸었더니 "꺼져라"고 한다. 쿵 하면서 차가 흔들리도록 큰 돌이 트렁크로 날아들었다.
엿새 폭동으로 55명이 숨졌다. 흑인촌과 북쪽 코리아타운 한인 가게 2000곳이 방화·약탈 당했다.
▶사우스센트럴 한복판 마틴루서킹 대로의 한인 주유소는 무사했다.
▶사우스센트럴 한복판 마틴루서킹 대로의 한인 주유소는 무사했다.
주변 주유소들이 불길에 휩싸여 폭발하는 사이 옆집 흑인 청년이 이틀 밤 꼬박 지켜줬다.
청년은 폭도가 주유기에 불을 붙이고 달아날 때마다 뛰어나가 소화기로 껐다.
"내 아저씨 주유소"라며 쫓아 보내거나 4~5달러씩 쥐여줘 달랬다.
그는 "오랫동안 다정하게 대해준 내 친구가 생업 잃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부터는 흑인의 시간이다. 경비원과 원수진 것 없으니 빠져라."
흑인 경비원 여덟 명은 기관단총 쏘아대는 폭도 수백 명과 이틀을 대치했다.
가게 냉장고 음식으로 연명하며 방위군 올 때까지 버텨냈다.
"직장을 지켜야 가족을 떳떳이 볼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던 흑인 경비팀장이 잊히지 않는다.
▶미국 퍼거슨 인종 소요를 보며 LA를 떠올렸다. 20년이 넘어도 바뀐 게 없다.
▶미국 퍼거슨 인종 소요를 보며 LA를 떠올렸다. 20년이 넘어도 바뀐 게 없다.
LA 폭동은 흑인 청년을 무자비하게 때린 백인 경찰 넷이 무죄 평결을 받으며 터졌다.
퍼거슨 사태도 비무장 흑인 청년을 사살한 경찰이 불기소되면서 불이 붙었다.
어제 아침 자그맣게 실린 퍼거슨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흑인 지역 가게들이 습격당하고 문 닫은 가운데 버젓이 영업하는 백인 주유소 이야기다.
이웃 흑인 넷이 소총 들고 지키는 덕분이다.
▶흑인들은 "주유소 주인이 주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줬고 고용한 흑인들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흑인들은 "주유소 주인이 주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줬고 고용한 흑인들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그에게 빚을 졌다"고 했다.
구례 지리산 자락에 류씨 고택 운조루가 있다. 이 집에 아래쪽 마개 달린 쌀뒤주가 전해 온다.
'타인능해(他人能解·다른 사람도 열 수 있다)'라고 써서 내놓고 누구나 쌀을 빼 가게 했다.
이런 베풂과 나눔으로 류씨 댁은 지리산에 빨치산이 출몰할 때도 화를 면했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덕을 쌓으면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했다.
논어 말씀을 지구 반대편 폭동 현장에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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