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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웅의 트렌드 돋보기] '잉카 트레킹'에서 배운 것

바람아님 2014. 12. 3. 10:51

(출처-조선일보 2014.12.03 어수웅 문화부 차장)


어수웅 문화부 차장해발 4200m에서 3박4일 동안 안데스산맥을 걷는 '잉카 트레킹' 출장을 다녀왔다.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를 찾아가는 1000년 된 길이다. 
하루 2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는 하늘길의 구체적 내용은 본지 내일자 여행면에 소개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과거의 잉카와 오늘의 페루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남미의 등뼈'로 불리는 판아메리카나 고속도로를 달리며 지붕 없는 집을 종종 목격했다. 
말 그대로 천장 없는 방이었다. 아무리 건조한 날씨라지만 이래서야 사람이 사는 집이라 할 수 있을까.
놀라운 것은 최저 생계비로 살고 있다는 이들이 지붕 없는 남루한 방에서도 최신 LED TV와 
하이엔드 오디오를 즐긴다는 사실이었다.

페루를 '황금 의자에 앉아 구걸하는 걸인(乞人)'으로 비유하는 표현이 있다. 
금·은·구리가 풍성한 자연자원 대국 페루와 그 풍성함이 빚어낸 역설에 대한 비판이다. 
3박4일을 함께 걸은 페루 청년 에드가는 이 비유를 불편해했다. 
해안 지방에 일부 그런 현실이 있기는 하지만 산악 지형에 사는 페루 사람들은 근면하다는 반박이었다. 
일곱 살 딸 하나를 둔 서른두 살의 근면한 가장은 관광객의 짐을 들어주는 포터에서 시작해 외국인 전문 가이드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젊은이다. 잉카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만 겨우 익힌 뒤 포터 인생이 대부분인 이 동네 현실에서 
그는 5개국 언어를 구사했다. 케추아어와 스페인어는 물론 영어와 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도 자유자재였다. 
물론 돈을 내고 정식 교육기관에서 배운 언어는 아니었다. 
바텐더로 일하는 술집에 손님으로 찾아온 미국인에게 영어를 배우고 대신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식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 젊은 아빠는 일곱 살 딸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시 한국으로 고개를 돌린다. 
최근 치과 의사인 친구의 한숨과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이 자신보다 더 자주 스마트폰을 교체하더라는 것이다. 
월급도 몇 푼 안 되는데 최신 폰 출시 소식만 들으면 갈아 치운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소리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 월급으로는 어차피 아무리 모아봐야 집도 못 사고 차도 못 살 형편인데 
그나마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스마트폰이라도 바꾸겠다는 대꾸였다.

페루와 한국을 동렬에 놓고 비유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사다리가 줄어든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 청년들의 좌절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남 탓, 구조 탓만 하면서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않을까. 
같은 땅에서도 누구는 천장 없는 방에서 하루살이 삶을, 다른 누구는 5개 국어를 마스터하며 지구 반대편에서 
온 관광객을 감동시킨다.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며, 잘하게 되면 분명히 사회가 당신을 원한다. 
에드가와 함께 걸으면서 몸으로 깨달은 교훈, 어쩔 수 없이 해답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