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11 오윤희 국제부 기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서 '감시와 처벌' 첫머리에서
루이 15세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반역자에게 내려진 판결문을 소개했다.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가슴·팔·넓적다리를 지지고, 국왕을 시해하려 할 때 사용한 단도를 오른손으로
잡게 한 뒤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쇠집게로 지진 곳엔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과 송진, 밀랍과 유황을 붓는다."
이런 비인간적 신체 형벌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은밀한 감시로 모습을 바꾼 채
이런 비인간적 신체 형벌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은밀한 감시로 모습을 바꾼 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0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공개한 CIA 고문 보고서를 통해 '민주주의의 표상'이라는
미국에서도 가학적이고 야만적인 심문이 공공연히 행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문관들은 수감자들의 직장(直腸)에 호스를 꽂고 신체에 물을 주입하거나
17일 연속 잠을 재우지 않았고, 상자에 29시간 동안 가둬두기도 했다.
이런 고문 행위를 CIA는 '강화된 심문(enhanced interrogation)'이라 불렀다.
CIA 보고서로 평등과 인권을 강조해 온 미국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CIA 보고서로 평등과 인권을 강조해 온 미국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될 질시와 비난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인권 탄압을 중지하라"며 압력을 가해왔던 중국과 북한이 반격할 것이고,
유엔과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 단체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CIA와 정부 관리를 기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퍼거슨 사태'로 불거진 흑백 갈등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이 왜 굳이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퍼거슨 사태'로 불거진 흑백 갈등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이 왜 굳이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결함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 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미국의 민낯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미국의 민낯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은폐하려고 하지 않았고,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것을 공개했다.
우리는 어떤가. 정치권에선 수시로 권력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오지만 누구 하나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어떤가. 정치권에선 수시로 권력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오지만 누구 하나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
또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변명하거나 "나도 피해자"라며 항변할 뿐이다.
인기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주인공인 TV 뉴스 앵커는 한 대학교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인기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주인공인 TV 뉴스 앵커는 한 대학교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미국이 왜 가장 위대한 국가인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주인공은 미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열거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은 가장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겁니다."
미국의 실상은 아름답지도, 위대하지도 않았다.
미국의 실상은 아름답지도, 위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가진 저력이며 가능성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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