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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예쁘게 찍어줘요"

바람아님 2014. 12. 9. 10:25

(출처-조선일보 2014.12.09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지난 2일, 쌀쌀한 아침. 꽃할매, 꽃할배들이 구청 자치회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장수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독거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살짝 바꾼 말이다. 
사진작가 임익순씨와 익명의 독지가가 벌인 일. 
소프트박스 조명과 붐스탠드, 반사판과 배경지까지 갖춘 그럴듯한 사진관이 차려졌다. 
예상 인원은 100여분. 김○순(82) 할머니는 한복 곱게 차려입고 화장도 했다. 
"기분 좋으세요?" 
"몰라. 내 마지막 사진이야. 이쁘게 찍어줘. 저승 갈 때 가져가려고." 
박○철(77) 할아버지는 
"기분이 멍멍해. 평생 처음 찍는 거야. 죽을 때 어떡하나 걱정했어." 
"가족은요?" "어디 사는지 몰라. (정부) 혜택도 못 받아. 새끼들 병신 만들기 싫어 이혼도 안 했어. 
비기(보기) 싫은 것들. 마누라? 얼마나 독한 여잔디. 찾아서 뭐해? 난 오래 못 가. 맨날 아파."

우윳빛 인조 밍크코트를 입은 오○자(74) 할머니, 도로 집으로 간단다. 
"한복 입고 다시 올 거야"라며. 한복 입은 김 할머니가 부러웠나 보다. 
"근데 한복을 찾아야 해. 옷을 보따리 보따리 싸놨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노령연금 20만원 받아. 
골목 청소하면 또 20만원 줘. 근데 12월에 끝나. 내년 3월 다시 시작해. 1, 2월은 20만원으로 살아. 집세 내면 없다고."

윤○선(78) 할아버지, '꼭' 할 말 있단다. 
"열네 살에 아버지 돌아가셨어. 지게 많이 져서 안짱다리야"라며 
"노령연금에 생활급여·주거급여에 장애인연금 5만원 합쳐서 50만원쯤 받아. 
난 건강해. 건강하니까 혼자 사는 게 더 힘들어. 몸이 아픈 노인들은 병에만 신경 쓰니까 잘 몰라. 
나이 들면 정으로 살아야지. 사랑보다 더 깊은 게 정이잖아. 정!" 
"경로당은요?"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안노인(여자)과 바깥노인(남자)이 따로 있어. 못 만나. 
바깥노인들은 호랑이 등 안 타본 놈이 없고 호랑이 꼬랑지 안 잡아본 놈이 없어. 자랑질만 해대지. 
소싯적 계집질한 얘기들만 하고. 국가가 결혼시켜주면 좋겠어. 한집 살면 돈도 절약되고. 
안노인과 보듬고 살고 싶어. 외로운 게 싫어. 무서워." 
홀로 영정사진 찍는 심정, 어찌 헤아릴까나.

[일사일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