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홍콩의 K팝 축제

바람아님 2014. 12. 7. 10:20

(출처-조선일보 2014.12.06 오태진 논설위원)


카메라를 든 앳된 여자들이 인천공항 출국장을 쏘다녔다. 하나같이 고급 카메라에 긴 줌렌즈를 달았다. 

수속 카운터를 기웃거리며 셔터를 눌러댄다. 홍콩에 가는 한국 '아이돌' 스타가 표적이다. 

사진을 찍어 팬클럽에 파는 '한국형' 파파라치라고 한다. 스무명쯤은 아이돌 멤버 둘을 따라 비행기를 탔다. 

대부분 중화권에서 온 열성 팬이다. 홍콩에 내리자 아이돌을 쫓아 뛰느라 공항이 소란했다. 

보안요원 열댓명이 손을 맞잡고 한국 아이돌을 에워싸 호위했다.


▶엊그제 홍콩에서 열린 K팝 시상식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를 보러 갔다. 

공항에서부터 벌어진 진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상과 공연은 저녁 7시 첵랍콕 섬 공항 곁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중국·대만·동남아·일본의 K팝 팬이 아침부터 모여들었다. 

12만~30만원씩 하는 입장권 1만1000장이 온라인 예매 한 시간 만에 동나 암표까지 돌았다고 한다. 

K팝 공연 장면을 스치듯 TV로 보긴 했어도 객석에 앉고 보니 정신이 없다.

칼럼 일러스트

▶공연장은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으로 넘쳤다. 

소녀 팬들이 불 깜빡이는 꽃 모양 머리 장식을 쓰거나 막대를 흔들었다. 누구 팬인지 알리는 표시이기도 하단다. 

비명에 가까운 함성과 바닥까지 흔드는 사운드가 넋을 빼놓는다. 

앞자리 소녀들이 걸핏하면 일어서지만 따라 일어설 수도 없고. 

이름처럼 '전설적'인 팝스타 존 레전드와 서태지·이승철이 간간이 무대에 오르는 게 반가웠다.


▶정작 이 스타들이 노래할 때 객석은 잠잠했다. 

레전드의 무대를 보는 아이돌 얼굴이 전광판에 뜨자 함성이 노래를 덮어버렸다. 

사실 틀로 찍어낸 듯 무더기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이 달갑지 않았다. 

꼬박 네 시간 반을 지켜보며 그런 아이돌이 K팝 경쟁력과 열풍의 주역이라는 걸 알았다. 

태양과 G드래곤은 예순 다 된 사람에게도 매력적이었다.


▶남의 집 안방에서 K팝 잔치를 벌이며 '아시아 음악상'이라고 하는 것도 의아했었다. 

그 의문도 풀렸다. 온라인 투표 6800만건 중에 한국은 10%도 안 됐다. 

공연 실황은 중화권부터 동남아·일본·호주·브루나이까지 16개 나라 TV 채널로 생중계됐다. 

온라인까지 합치면 시청자가 24억명이라는 게 주최 측 계산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라고 내세울 만하다. 

공연장을 나서자 겨울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이 많은 소녀들이 자정 다 돼 어디를 어떻게 가나 걱정스러웠다. 

소녀들 얼굴은 별걱정 다 한다는 듯 밝기만 했다. 

큰 숙제를 했거나 원을 풀어 후련하다는 표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