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06 오태진 논설위원)
카메라를 든 앳된 여자들이 인천공항 출국장을 쏘다녔다. 하나같이 고급 카메라에 긴 줌렌즈를 달았다.
수속 카운터를 기웃거리며 셔터를 눌러댄다. 홍콩에 가는 한국 '아이돌' 스타가 표적이다.
사진을 찍어 팬클럽에 파는 '한국형' 파파라치라고 한다. 스무명쯤은 아이돌 멤버 둘을 따라 비행기를 탔다.
대부분 중화권에서 온 열성 팬이다. 홍콩에 내리자 아이돌을 쫓아 뛰느라 공항이 소란했다.
보안요원 열댓명이 손을 맞잡고 한국 아이돌을 에워싸 호위했다.
▶엊그제 홍콩에서 열린 K팝 시상식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를 보러 갔다.
공항에서부터 벌어진 진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상과 공연은 저녁 7시 첵랍콕 섬 공항 곁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중국·대만·동남아·일본의 K팝 팬이 아침부터 모여들었다.
12만~30만원씩 하는 입장권 1만1000장이 온라인 예매 한 시간 만에 동나 암표까지 돌았다고 한다.
K팝 공연 장면을 스치듯 TV로 보긴 했어도 객석에 앉고 보니 정신이 없다.
▶공연장은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으로 넘쳤다.
소녀 팬들이 불 깜빡이는 꽃 모양 머리 장식을 쓰거나 막대를 흔들었다. 누구 팬인지 알리는 표시이기도 하단다.
비명에 가까운 함성과 바닥까지 흔드는 사운드가 넋을 빼놓는다.
앞자리 소녀들이 걸핏하면 일어서지만 따라 일어설 수도 없고.
이름처럼 '전설적'인 팝스타 존 레전드와 서태지·이승철이 간간이 무대에 오르는 게 반가웠다.
▶정작 이 스타들이 노래할 때 객석은 잠잠했다.
레전드의 무대를 보는 아이돌 얼굴이 전광판에 뜨자 함성이 노래를 덮어버렸다.
사실 틀로 찍어낸 듯 무더기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이 달갑지 않았다.
꼬박 네 시간 반을 지켜보며 그런 아이돌이 K팝 경쟁력과 열풍의 주역이라는 걸 알았다.
태양과 G드래곤은 예순 다 된 사람에게도 매력적이었다.
▶남의 집 안방에서 K팝 잔치를 벌이며 '아시아 음악상'이라고 하는 것도 의아했었다.
그 의문도 풀렸다. 온라인 투표 6800만건 중에 한국은 10%도 안 됐다.
공연 실황은 중화권부터 동남아·일본·호주·브루나이까지 16개 나라 TV 채널로 생중계됐다.
온라인까지 합치면 시청자가 24억명이라는 게 주최 측 계산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라고 내세울 만하다.
공연장을 나서자 겨울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이 많은 소녀들이 자정 다 돼 어디를 어떻게 가나 걱정스러웠다.
소녀들 얼굴은 별걱정 다 한다는 듯 밝기만 했다.
큰 숙제를 했거나 원을 풀어 후련하다는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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