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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개성공단 10년

바람아님 2014. 12. 15. 09:38

(출처-조선일보 2014.12.15 신효섭 논설위원)


1998년 소떼를 몰고 남북 경협을 논의하러 평양에 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숙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왔다. 
김은 "남북 공단이 왜 개성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북측은 "개성은 군사 요충지라 군부가 반대한다"며 신의주를 제안하고 있던 터였다. 
정 회장은 "공단 생산품들을 남쪽에 팔아야 하니 개성이 경제적"이라고 했다. 
김은 그 자리에서 관계자에게 "내일 정 회장을 모시고 가 개성 현장을 보여 드리라"고 했다. 
개성공단은 이렇게 결정됐다.

▶공단 초기 우리 업체들은 통신 사정이 나빠 서울과 통화하려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남북 왕래는 한 달 전에 신청, 허가를 받아 하루 네 번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어 잘못하면 여러 날 발이 묶여야 했다. 
한 업체 사장은 북측 근로자 대표에게 "회의하자"고 세 번이나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곁에 있던 북한 직원이 "회의 말고 '사업총화하자'고 해보라"고 해 그렇게 했더니 금방 달려왔다고 한다. 
농사일만 해온 개성 주민들을 기술자로 만들기 위해 중국 등에 '해외 연수'를 보낸 기업도 여럿이다.

[만물상] 개성공단 10년
▶우리 기업들은 한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성과급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은 "사회주의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불허했다. 업체들이 생각해낸 대안이 '초코파이 수당'이다. 
간식으로 기본 2개씩 주던 것을 연장 근무하면 2개 더, 목표량을 채우면 몇 개 더 주기로 했다. 
봉지 커피, 율무차, 초코바도 동원했다. 북은 이런 '현물 성과급'은 묵인했다.

▶2004년 12월 15일 한 주방 기기 제조업체가 공단 입주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냄비 1000세트를 생산, 
그날 오후 서울로 실어와 백화점에서 팔았다. 
18개였던 업체 수는 125개로, 북한 근로자는 6000여명에서 5만2000여명으로 늘었다. 
2005년 1491만달러였던 연간 생산액은 올해 5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부는 개성공단을 통해 근로자 임금 8400만달러를 포함해 연간 8600만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임금의 상당 부분이 정권 금고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씨 왕조 배만 불려주는 꼴"이라며 공단 자체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북 경협의 끈이다. 
지난 10년간 '북한 리스크'를 완화시키고, 남북 주민 간 이질감 해소에 기여한 성과도 무시할 수 없다. 
북의 억지 요구나 협박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공단은 더 키우고 발전시키는 방향이 옳다. 
그러려면 먼저 북측이 통행·통신·통관의 3통(通) 문제, 
우리 기업의 근로자 통제권 강화 같은 묵은 숙제들부터 빨리 해결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