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중앙일보 2014-12-15일자]
전수진/정치국제부문 기자
괄호 속엔 이런 설명이 붙었다. “찌라시란 증권가와 언론계에서 유통되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어에서 유래했다.”(코리아중앙데일리 12월 7일자) 그런데 이 기사를 읽은 도쿄에 사는 일본인 기자 지인이 “그 일본어 단어가 뭐냐”고 물어왔다. 국내 시중에 떠도는 대로 “뿌리다”라는 뜻의 ‘지라스(散らす)’의 명사형이자, ‘전단’ 등을 의미하는 ‘지라시(散らし)’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소개하자 그는 반문했다. “근데 왜 ‘chirasi’가 아니냐. 안 좋은 거니까 일본어라고 갖다 붙인 거 아니냐”고. 자기도 기사를 써야 하니 정확히 알고 싶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시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상 파찰음 표기까지 검색하며 나온 건 한숨뿐.
찌라시의 악몽, 생각해보면 처음은 아니다. 영어신문 시절 어느 미국인 에디터가 찌라시에 대해 물어보더니 이런 감상을 내놨다. “한국인들은 ‘관계자’나 ‘당국자’ ‘소식통’이라는 말 뒤에 숨은 익명성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찌라시는 그런 경향의 정점인 것 같고. 근데 좀 비겁한 것 같은데.” 당시엔 나름 반론을 펼쳤지만 요즘 들어 카카오톡 창에 난무하는 ‘받은 글’의 애매모호하고 책임회피적인 ‘카더라 통신’을 보면 같은 생각이 든다. 끼워 맞추기식 추측의 애꿎은 희생양들을 그간 상당수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이제 영어로까지 둔갑할 정도로 힘이 세졌다. 구글 검색창에 ‘jjirasi’를 넣으면 다양한 ‘메이드 인 코리아’ 소문이 뜬다. 걸그룹에서 재계 관련 소식까지, 그것도 영어로.
지난봄 타계한 시인 마야 안젤루는 “말은 생물과 같다”고 했다. “말은 내뱉는 순간 네 방 벽에, 네 옷에 달라붙고 결국은 네 안으로 스며든다”며 말의 무서움을 경고했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엔 ‘찌라시’라는 품위 없고 의뭉스러운 말이 스미고 있다. 끈적하게, 오싹하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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