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18 김재원 KBS아나운서)
꽤 오래전 일이다. 미국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
새벽에 생방송을 마치고 바로 공항에 간 터라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잘 생각이었다.
앞자리에는 6개월 남짓한 아기가 타고 있었다. 처음부터 칭얼대던 아기는 내내 울며 보챘다.
유난히 어려 보이는 아기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적잖이 짜증이 났다.
승무원들도 몸이 달아 연신 오가며 아기를 달랬다.
아기 엄마와 주변 승객들을 위해 아기를 갤리로 데려가기도 했다.
내가 화를 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손님, 죄송합니다. 많이 힘드시죠? 아기가 감기로 고생하는 중이라 더 보챈다고 하네요.
"손님, 죄송합니다. 많이 힘드시죠? 아기가 감기로 고생하는 중이라 더 보챈다고 하네요.
얼마나 짜증 나실까요? 죄송합니다. 손님."
승무원들은 연신 사과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계속 음료와 땅콩을 갖다 주었다.
승무원들은 연신 사과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계속 음료와 땅콩을 갖다 주었다.
그들의 가장 큰 위로는 공감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분노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다가 갤리에서 승무원들이 아기를 달래며 하는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됐다.
"이 아기 해외에 입양되는 거래요. 아마 그래서 더 우나 봐요. 보호자도 엄마가 아니니까 아픈 아이 달래기 힘든 거고요."
승무원은 감정노동자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승객의 감정에 맞춰 서비스를 해야 한다.
승무원은 감정노동자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승객의 감정에 맞춰 서비스를 해야 한다.
승무원에게는 입양되는 아기도, 아기의 보호자도, 주변에 앉은 승객도 소중한 손님이다.
문제 해결은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 문제 해결이 안 되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승무원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체의 흔들림도, 기내 난동 승객도, 우는 아이도 해결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승객은 화를 가라앉힌다.
그 봉투에는 땅콩이 여러 봉지 들어 있었다. 그들이 줄 수 있는 선물은 땅콩뿐이었다.
그 땅콩은 '공감'이라는 봉투에 담겨 있었다.
참,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나의 꿈은 승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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