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는 배럴당 60~8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유가 상승세가 한풀 꺾인 작년 말이나 올해 초 얘기가 아니다.
유가가 한창 배럴당 140달러대로 치솟고 있던 2008년 7월 에너지 전문가인 김태유 서울대 교수가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원고지 25장이 넘는 그의 인터뷰 전문은 지금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는 그런 전망의 근거에 대해 "유가가 오르면서 그동안 비싼 채굴 비용으로 석유 매장량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오일샌드(Oil Sand)와 오일셰일(Oil Shale) 개발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배럴당 60~80달러인가?
그는 "세일가스 등의 생산 기술 한계, 기존 원유 채굴 방식의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석유 가격은 일시적으로는 더 내려갈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더 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유가가 6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이번엔 신(新)저유가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난리다.
최근 김 교수를 만난 것은 그의 '족집게 예측'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고유가 시대가 다시 오면 우리는 또 속수무책이 될 수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책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중 하나가 새로운 탐사 기술 개발을 통한 해외 유전 개발이었다.
프랑스는 국내에서 석유가 거의 생산되지 않지만 토탈이라는 세계적 석유 회사를 통해 해외 석유 자원을 확보해서
자급률이 90% 이상이고 가스 자급률은 100%가 넘어 수출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 확보는 미래를 위해 30년 이상의 장기 비전을 갖고 쉬지 않고 도전해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쯤에서 기자는 '에너지판(版) 변양호 신드롬'이 떠올랐다.
요즘 '자원 외교 실패' 논란으로 그나마 추진되던 에너지 확보 전략마저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한다.
마구잡이식 자원 외교를 두둔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따지고, 처벌할 일이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
다만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한 변양호씨가 수년간 재판에 시달린 이후
우리 금융 관료들은 국가 이익이란 사명감 대신 자신이 책임질 일은 피하는 쪽에 중심을 두게 됐다는 게
'변양호 신드롬'의 요체다.
그는 결국 무죄로 판명됐다.
요즘 벌어지는 '영혼 없는 관치 금융' 논란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오는 자원 외교 논란 때문에
앞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가게 될까 걱정스럽다.
김 교수는 "에너지 전문가들도 부족한 데다
그나마 에너지 정책을 이끄는 공공 기관들은 모두 보신주의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해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원 외교의 파탄은 방향성 문제가 아니라 집행자들의 전문성 결여와 정치성 때문이었다.
자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에너지 한 방울 없는 나라에서는 숙명이다.
병든 소를 잡는다고 외양간까지 태울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