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관한 수많은 국제적 통계 중 은근히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살하는 국민의 비율이 세계 모든 나라 중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는 싸움질이 너무 많다.
밤낮없이 여와 야, 좌와 우, 회사와 노조, 재벌과 국민, 선생과 학생이 싸우고 있다.
싸움판 나라가 주는 스트레스가 자살을 촉진하지 않나 싶다.
한국만큼 사는 나라 중에 한국만큼 갈등이 없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사는 나라 중에 한국만큼 갈등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은 갈등이 싸움질까지 가지 않는다.
갈등을 풀어 줄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정치권이다.
미국만큼 큰 문제를 많이 가진 나라도 별로 없다.
인종·총기·범죄·마약 등 메가톤급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심각한 싸움질은 없다.
정치권이 청문회 등을 통해 갈등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무상 급식 이슈가 나왔다면 제일 먼저 열리는 것이 국회 청문회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무상 급식 이슈가 나왔다면 제일 먼저 열리는 것이 국회 청문회이다.
이 청문회는 무상 급식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를 한자리에 모아 의원들이 날카롭게 질문하고
답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마음껏 충분히 토로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이고 TV 중계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를 통해 사안의 장단점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이 청문회는 정책 입안자에게 기막힌 교육의 장이다.
이 청문회는 정책 입안자에게 기막힌 교육의 장이다.
이를 통해 어느 시민이나 유권자가 물어도 자기가 왜 그 방향으로 입장을 정했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근거를 얻어낼 수 있다. 또 양쪽이 자신들의 생각·희망·좌절감·분노 등을 가감 없이 털어낼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의 배출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모든 주장이 충분히 소명되었기 때문에 표결에 들어가고 결과를 승복하기 쉬워진다.
청문회는 국회의원이 얼마든지 열 수 있다. 미국 의원들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국회의원이 얼마든지 열 수 있다. 미국 의원들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청문회가 하루에도 수없이 열린다.
국회가 정책 토론장, 진실 규명장, 울분 토로장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갈등이 싸움질로 가지 않고 끝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그런 토론은 다수가 공감하는 합리적 근거를 가진 해결책으로 연결된다.
우리 정치권에는 이런 것이 없다. 다른 말로 우리나라에는 토론, 즉 갈등 해소의 장(場)이 없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이런 것이 없다. 다른 말로 우리나라에는 토론, 즉 갈등 해소의 장(場)이 없는 것이다.
우리 국회의원은 미국과 달리 독립성과 자율권을 가진 헌법기관이 아니라 정당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청문회도 정당이 열어야지 국회의원 개인은 열 수 없다. 정책도 당론을 정하면 의원은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에 반발하면 징계당하고 자칫 다음 공천을 못 받는다.
우리 정치권이 엉망인 것은 국회의원들이 나쁘거나 못나서가 아니다. 그들을 잘못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이 엉망인 것은 국회의원들이 나쁘거나 못나서가 아니다. 그들을 잘못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수기로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민주적인 정당제도가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모든 질곡의 근본 원인이다.
국회의원을 정당의 족쇄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그
국회의원을 정당의 족쇄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그
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국민 간의 이념적·정책적 갈등들을 한편으로 대변하고,
다른 한편으로 해소해주는 진정한 공복(公僕)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 민주화보다 정당 민주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