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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작업 중단, 비겁하다

바람아님 2015. 1. 30. 00:33

[중앙일보 2015-1-30 일자]

 

1년 반 동안 야심 차게 추진돼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작업이 중단됐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올해 안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다. 고소득 직장인 봐주기니 개선 방침 백지화니 등등 비판이 거세다. 29일 청와대가 나서 “백지화가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을 감안하면 올해를 넘기면 백지화되는 것과 다름없다. 한마디로 비겁하고 무책임한 후퇴다.

 정부는 자료 미비, 충분한 논의 부족 등을 연기 이유로 댄다.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자라(연말정산 파동)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라는 속담이 딱 맞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마당에 건보료 개선안이 추락을 가속화할 것이라 예상했을 터이다.

 하지만 건보료 부과체계는 정치의 문제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곪아 있다. 지역건보는 1988년, 직장건보는 77년의 틀에 맞지 않는 옷을 입혀 놓았다. 직장과 지역 가입자의 부과방식이 달라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재산과 자동차에 억지로 건보료를 부과하면서 은퇴자·실직자의 건보료가 직장 시절보다 약 두 배로 뛴다. 2013년 61만여 세대가 이런 덫에 걸렸다. 저소득층의 허름한 다세대주택에도 몇 만원의 건보료를 물린다. 이런 제도 탓에 송파 세 모녀가 월 5만원의 건보료를 냈다. 사회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한 해 5700만 건의 민원이 발생한다. 일부는 시너나 도끼를 들고 건보공단 지사를 찾아서 불만을 쏟아낸다. 한국 건강보험의 부끄러운 그늘이다.

 원칙적으로는 소득에만 건보료를 물리는 게 맞다. 하나 한꺼번에 그리 가기에는 난관이 많다. 그래서 기획단이 점진적 대안을 제시했다. 재산건보료 인하, 인두세적 성격의 저소득층 소득평가 방식 폐지, 최저보험료 일괄부과 등의 대안을 내놓았다. 대신 종합소득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의 부담을 늘리기로 했다. 설계 하기 나름이지만 이렇게 하면 지역가입자 600만 세대가 혜택을 보고,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 45만 명의 부담이 늘어난다. 이렇게 바꾼 뒤 중장기적으로 소득에만 부과하는 쪽으로 가면 된다.

 정부는 지역가입자 759만 세대의 원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들이다. 당장 연기 방침을 철회하고 개선 기획단이 제시한 안을 토대로 상반기 내에 실시설계도를 짜야 한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 직장인들에게 좀 더 부담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이게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길이다. 그러면 대통령 지지율도 따라서 올라갈 것이다. 하루 아침에 정책을 뒤집은 과정도 되짚어야 한다. 그동안 팔짱만 끼고 있던 정치권이 이번 일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아서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