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길바닥' 전시장

바람아님 2015. 2. 5. 09:06

(출처-조선일보 2015.02.05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사진
길에 서서 깨진 유리병 조각이 빛을 받아 만들어낸 색의 이름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의 찢긴 사진을 주워 바라본 적은?

길에 나가 땅을 보며 걷다 보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길에서 주워온 것들을 모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정하고 다녀서 그런지 길을 나서면 하다못해 찢긴 메모 한 조각이라도 줍게 된다. 
주워온 것들을 닦아 사진을 찍어보고, 그 외곽선들을 따라 그림도 그려보고, 
그것의 쓰임이나 그걸 쓰는 사람을 상상도 해본다.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을 하나 둘 모아두고 바라보면 
주워온 물건과 나 사이에 또는 물건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생긴다.

주은 것들 중에서 특별히 좋아해서 계속 모으고 있는 게 
일회용 라이터 손잡이 부분의 플라스틱 조각〈사진〉이다.


	일회용 라이터 손잡이 부분의 플라스틱 조각들 사진
 /공혜진씨 제공

처음엔 무엇의 일부인지 알아내려고 주변에 사진을 보내도 
보고, 마트나 문방구를 열심히 둘러보고, 
평소에도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피곤 했다. 
정작 그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건 길 위에서다. 
누군가가 버린 일회용 라이터를 줍고서야 알았다. 

길에서 주은 것들은 대부분 하나의 완전체이기보다 
무엇의 부분이었거나 작아서 일부러 따로 떼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길은 전시 공간이 되고 그 위에 떨어져 
있는 것들은 하나의 전시품이 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의미를 두고 보지 않으면 그냥 길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로 
여겨지겠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니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무엇의 부분들을 주워와 바라보고 기록하면서 새롭게 보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줍는 행위에는 주워온 대상을 무엇의 부분이 아닌 주은 물건 자체에 집중해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 
주변에 있는 아무리 소소하고 사사로운 것이라고 해도 
예사로이 존재하는 건 없다. 내일은 길에서 또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