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03-23
禪시조 대가 오현스님… 美버클리大초청강연

20일(현지 시간) 이 대학 한국학센터에서 스님을 초청한 가운데 ‘설악무산 그리고 영혼의 울림’ 행사가 열렸다. 필명인 오현 스님으로 더 유명한 스님의 공식 법명은 무산이다. ‘선(禪) 시조’의 대가인 스님은 2007년 시집 ‘아득한 성자’로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어 시조 보급 운동을 펼치는 데이비드 매캔 전 하버드대 한국학 소장, 시조 번역가 하인즈 인수 펜클 뉴욕주립대 교수의 시조 강연에 이어 스님과 이 대학 동아시아어문학과 초빙교수로 이번 행사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의 대담, 이유경 명창의 시조창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미국 계관시인이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영문학과 교수인 로버트 하스 교수를 비롯해 현지 주민과 교민, 대학생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오현 스님은 참선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해가 뜨면 일어나 밥 먹고, 웃을 일 있으면 웃고, 아첨할 일 있어 아첨하다 보면 하루가 후다닥 간다”며 “별거 없다. 하루 일과가 다 참선이고 따로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시 권 교수가 “말이 어렵다. 그래서 선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오현 스님은 장난치듯 권 교수를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참 딱하다. 내빈들은 다 알아들었는데 교수님만 자꾸 어렵게 듣는다”라고 하자 객석에선 박장대소가 터졌다. 스님의 말이 이어졌다. “학자들이 선을 말과 글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을 따라가면 다 죽습니다, 죽어요. 선을 이야기하면 철사로 자기를 꽁꽁 결박하는 것과 같아요. 토끼는 뿔이 없고 거북이는 털이 없는데 토끼의 뿔, 거북이의 털 이야기를 내가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
오현 스님은 지혜를 들려 달라는 대담자의 요청에 “입은 열지 않으면 본전이고 열면 손해”라며 여러 번 천진한 웃음을 짓고서야 입을 열었다. “인류에는 절대존자가 없어요.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죽었어요. 내가 없으면 세상에 극락도 지옥도, 아무 것도 없어요. 내가 절대존자임을 먼저 자각하면 모든 사람이 한 분 한 분 다 절대존자임을 알고 받들게 됩니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입니다.”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평화를 위한 화두도 나왔다. 오현 스님은 “핵은 인류 재앙의 근원이니 지금 폐기하지 않으면 인류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핵과 살상 무기를 만드는 막대한 돈으로 복음 사업에 사용하라”고 했다.
오현 스님은 다함께 5초간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자며 고개를 숙인 뒤 죽비로 손바닥을 세 번 힘 있게 내리쳤다. 권 교수는 “스님께서 아마 이 자리를 설악산 선방으로 알고 허공이 찢어지는 죽비를 치신 것 같다”고 했다.
하스 교수는 “오현 스님은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볼 순 있어도 퍼 올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퍼 올려 가지고 갈 수 있는 귀중한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재미교포 학생 애슐리 김 씨(21)는 “시조를 구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님 강연을 듣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치 있게 풀어내는 게 미국의 힙합보다 낫다”고 했다.
버클리(캘리포니아)=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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