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양선희의 시시각각] "최고 악질 포주는 나라다"

바람아님 2015. 4. 15. 10:23

[중앙일보] 입력 2015.04.15 

양선희/논설위원

“최고 악질 포주는 나라다.” 어느 집창촌 여성의 말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했다. ‘성매매 특별법’ 이전에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있었다. 성매매 특별법에선 인신매매 등 강제 성매매의 경우엔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매수자인 남성도 처벌한다. 하지만 과거엔 성매매 여성들만 불문곡직하고 처벌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툭 하면 단속에 걸려 벌금을 바치니 나라가 악덕 포주라는 거다. 법으로만 보자면 성매매 여성에겐 ‘성매매 특별법’보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훨씬 가혹했다.

 그럼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현행법에 훨씬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법 자체의 문제보다 ‘생계형 성매매’에 대해 가혹해진 환경 때문일 거다. 과거 나라는 성매매에 대해 이중적이었다. 법으론 금지하면서도 집창촌은 번성했다. 보건소들은 주기적으로 여성들의 위생검사를 해줬고, 미군부대 주변의 성매매 여성들에겐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별적 단속으로 벌금을 거둬들였고, 그 안에서 벌어졌던 착취는 적당히 묵인했다. 성매매산업은 그렇게 위법과 묵인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인신매매까지 일삼을 정도로 악랄해졌다.

 2000년 종암경찰서에 김강자 전 서장이 부임했던 때를 기억한다. 그는 지금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제한적 공창제’를 주장하지만 당시엔 ‘성매매와의 전쟁’이 뜨거운 아이콘이었다. 그는 관내 대규모 집창촌이었던 미아리 텍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한동안 그가 업소 단속을 지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단속보다 성매매 여성들의 보호자로 돌아섰다. 포주들과 마주 앉아 화대의 분배 비율과 휴일 등의 영업 원칙을 정했다. 미아리 텍사스를 벗어나려는 여성들은 빠져나오도록 했고, 자활훈련도 지원했다. 그 모습에 ‘공권력은 저렇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나도 그보다 10년 앞서 종암서에서 경찰기자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집창촌과 성매매 여성들을 접했으며, 이후 그곳은 내게 숙제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나도 아마 최근 인터넷 댓글에 넘치는 ‘몸 팔아 편하게 돈을 번다’며 질타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청춘의 대열에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알게 된다. 성매매밖에 할 게 없는 ‘실존적 삶’이라는 게 있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던 순간의 막막함과 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다. 혹자는 쉽게 말한다. “의지를 갖고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면 먹고살 수 있다.” 한데 종일 설거지라도 할 수 있는 체력도 못 타고난 데다 부모 복까지 없는 여성도 있다. 뼈와 근육이 약해 늘 앉아만 있는 성매매 여성이 있었다. 그가 사회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여성가족부는 탈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지원한다. 지난해 868명이 취업이나 진학을 했고, 월 60만~90만원을 받는 일자리 제공 사업에 562명이 참여했다. 성매매 특별법이 탈성매매를 돕고 빠져나올 길을 제시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은 범죄자로 규정해 삶의 터전에서 내쫓는다. 탈성매매의 의지조차 가질 수 없는, 우리 사회 가장 후미진 곳에 사는 그들을 어디로까지 내몰아야 하나.

 “성매매는 공공에 유해한 직업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최근 위헌심판 청구 중인 성매매 특별법의 매도자 처벌 조항(제21조 1항)이 합헌임을 주장한 변호사의 논리다. 정의로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일도양단으로 나뉘지 않는다. 구질구질해도 삶은 삶이다. 이 조항의 위헌성은 의문이다. 사회마다 지향하는 풍속의 기준이 있고, 풍속이 문란해지는 건 막아야 한다.

 하지만 약자들의 생계 문제를 법 조항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실존적 삶’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입법과 정책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들은 제일 약한 국민이다. 나라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헌재에만 맡겨놓지 말고 입법부와 정부가 정책적으로 ‘어떻게’에 대한 고민을 제발 해주기 바란다.

양선희 논설위원


영국 대학생들마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5.04.14


[뉴스위크] 턱없이 높은 학비 때문에 20명 중 1명 성산업에 종사

영국 런던에서 약 5만 명의 대학생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2010년).

영국 대학생 20명 중 1명은 몸을 판다. 스완지대학 연구진과 영국학생연합(NUS) 웨일스 지부가 공동으로 조사, 발표한 ‘대학생 섹스워크 프로젝트(Student Sex Work Project)’ 보고서의 내용이다.

영국 복권기금의 후원으로 대학생 675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 따르면 영국 대학생 중 약 4분의 1은 학비를 벌기 위해 매춘을 고려한 적이 있다. 조사 대상의 56%는 매춘, 에스코팅, 스트리핑, 인터넷 포르노로 기초 생활비를 벌었다고 말했다. 약 40%는 졸업할 때 학자금 부채를 줄이고 싶으며, 45%는 대출 상환금 체납을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학생 대부분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성 매매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복권기금 측은 이번 통계를 통해 영국 전역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성산업에 발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NUS 웨일스의 여성 대표 로지 인먼은 정부와 대학이 학생들의 재정과 복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학생들이 성산업에 발을 들여 놓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학생들은 3만 파운드(약 5000만원)의 빚을 안고 대학을 졸업하는 걸 두려워한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학생 중 상담을 원하는 비율은 21%로 늘었지만 인먼 대표는 대학 측이 그런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대개 대학 측은 학생의 복지보다는 학교 이미지 손상을 더 우려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학은 학생을 돌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대학은 학생을 고객으로 여긴다.”

보고서의 공동작성자인 스완지대학의 범죄학 부교수 트레이시 사가 박사는 많은 학생이 성산업에 종사하면 사회적으로 낙인 찍혔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숨기고 도움을 청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성산업은 여성이 주로 택하는 직업으로 널리 인식되지만 실제는 그런 남학생도 많다. 기존의 인식 때문에 남학생은 지원 대상에서 누락된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대학생 5명 중 3명은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일을 한다고 말했지만 4명 중 약 1명은 안전이 걱정된다고 인정했다. 법대를 졸업한 바네사 놀스는 아버지와 집을 잃은 뒤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스트리퍼로 일해 학비를 댔다며 “그게 돈을 벌 수 있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놀스는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학생이 많지만 성산업 서비스 제공업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갈수록 적어지며 규제도 심해져 학생들이 착취당하기 쉽다고 경고했다. “매춘은 고대 때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두고 정부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대학이 제공하는 서비스 수준에 비해 학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학교는 학생들을 소비자로 취급한다.”


글=헤일리 리차드슨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