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논설위원
그럼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현행법에 훨씬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법 자체의 문제보다 ‘생계형 성매매’에 대해 가혹해진 환경 때문일 거다. 과거 나라는 성매매에 대해 이중적이었다. 법으론 금지하면서도 집창촌은 번성했다. 보건소들은 주기적으로 여성들의 위생검사를 해줬고, 미군부대 주변의 성매매 여성들에겐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별적 단속으로 벌금을 거둬들였고, 그 안에서 벌어졌던 착취는 적당히 묵인했다. 성매매산업은 그렇게 위법과 묵인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인신매매까지 일삼을 정도로 악랄해졌다.
2000년 종암경찰서에 김강자 전 서장이 부임했던 때를 기억한다. 그는 지금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제한적 공창제’를 주장하지만 당시엔 ‘성매매와의 전쟁’이 뜨거운 아이콘이었다. 그는 관내 대규모 집창촌이었던 미아리 텍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한동안 그가 업소 단속을 지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단속보다 성매매 여성들의 보호자로 돌아섰다. 포주들과 마주 앉아 화대의 분배 비율과 휴일 등의 영업 원칙을 정했다. 미아리 텍사스를 벗어나려는 여성들은 빠져나오도록 했고, 자활훈련도 지원했다. 그 모습에 ‘공권력은 저렇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나도 그보다 10년 앞서 종암서에서 경찰기자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집창촌과 성매매 여성들을 접했으며, 이후 그곳은 내게 숙제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나도 아마 최근 인터넷 댓글에 넘치는 ‘몸 팔아 편하게 돈을 번다’며 질타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청춘의 대열에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알게 된다. 성매매밖에 할 게 없는 ‘실존적 삶’이라는 게 있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던 순간의 막막함과 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다. 혹자는 쉽게 말한다. “의지를 갖고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면 먹고살 수 있다.” 한데 종일 설거지라도 할 수 있는 체력도 못 타고난 데다 부모 복까지 없는 여성도 있다. 뼈와 근육이 약해 늘 앉아만 있는 성매매 여성이 있었다. 그가 사회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여성가족부는 탈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지원한다. 지난해 868명이 취업이나 진학을 했고, 월 60만~90만원을 받는 일자리 제공 사업에 562명이 참여했다. 성매매 특별법이 탈성매매를 돕고 빠져나올 길을 제시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은 범죄자로 규정해 삶의 터전에서 내쫓는다. 탈성매매의 의지조차 가질 수 없는, 우리 사회 가장 후미진 곳에 사는 그들을 어디로까지 내몰아야 하나.
“성매매는 공공에 유해한 직업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최근 위헌심판 청구 중인 성매매 특별법의 매도자 처벌 조항(제21조 1항)이 합헌임을 주장한 변호사의 논리다. 정의로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일도양단으로 나뉘지 않는다. 구질구질해도 삶은 삶이다. 이 조항의 위헌성은 의문이다. 사회마다 지향하는 풍속의 기준이 있고, 풍속이 문란해지는 건 막아야 한다.
하지만 약자들의 생계 문제를 법 조항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실존적 삶’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입법과 정책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들은 제일 약한 국민이다. 나라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헌재에만 맡겨놓지 말고 입법부와 정부가 정책적으로 ‘어떻게’에 대한 고민을 제발 해주기 바란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