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7.0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 중 성 안토니우스, 1515년경,
나무판에 유채, 232×75㎝, 콜마르의 운터린덴 미술관 소장.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70년경~1528)의 '이젠하임 제단화'는 원래 알사스
지방 이젠하임의 성(聖) 안토니우스 수도회 교회의 제단화(祭壇畵)였다.
이 교회는 수도회가 빈민을 위해 운영하던 병원에 부속돼 있었다.
따라서 이 제단화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다.
중세부터 기독교인들은 성 안토니우스가 전염병, 특히 '성 안토니우스의 불'이라고 알려진 질병을
치유하는 기적이 있다고 믿었다. 그 고통이 마치 수족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고 해서 '지옥불'이라고도 부르는 이 병은 오염된 호밀빵이 유발한 식중독이나 대상포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병의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던 당시에 병원의 목표는 치유라기보다는 환자들에게 안식과
위로를 주는 것이었다.
성 안토니우스는 중앙 패널에 붙어 있는 오른쪽 날개에 그려져 있다.
성인의 뒤로 사악한 마귀가 유리창을 깨고 독기(毒氣)를 불어넣지만 T자형 단장을 짚고 선 성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하고 굳건하게 서 있고, 발밑에서는 약초가 자라난다.
그러나 이 패널의 뒷면에는 당당한 그 모습이 온데간데없고 온갖 악귀들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하는
성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성인은 수행을 방해하는 마귀들로부터 수시로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그 순간에는 성인인 그조차도 목소리를 높여 신(神)을 원망했다고 전해진다.
화가 그뤼네발트는 치유를 약속하는 성인의 권능만으로는 환자들을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환자들이 성인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그가 환자들의 아픔과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알사스 지방 이젠하임의 성(聖) 안토니우스 수도회 교회의 제단화(祭壇畵)
성 안토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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