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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순성기] ④광화문부터 홍제동까지…인왕산에서 본 서울

바람아님 2015. 7. 16. 11:21

 

조선비즈 : 2015.07.11

 

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던 윤동주는 매일 아침 인왕산(仁王山)을 산책했다. 같은 집 하숙생인 평론가 정병욱과 아침 식사 전에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 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문학이라는 공통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화 주제가 됐을 것이다. 인왕산은 시인 윤동주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 넣어 줬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하던 그 시기에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씨워진 시 등 대표작을 완성했다.

서울 중심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인왕산에서 두 청년은 갑갑한 조국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지 않을까. 윤동주가 대학에 입학한 1938년, 일본은 경제적 약탈을 넘어 민족 말살 정책을 폈다. 한국어 사용을 금지한 뒤 일본어를 쓰게 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윤동주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고 2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인왕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서울

윤동주가 내려본 당시 서울이 암울했다면, 지금은 그저 고요하고 평화롭다. 인왕산 순성길의 가장 큰 매력은 광화문, 여의도, 남산 등 서울 중심부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날씨가 맑으면 주요 건물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초행이라면, 인왕산에 오를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 좋다. 인왕산 입구에 선 사람들은 대개 숨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고쳐 멘다. 해발 338m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경사가 급한 구간이 자주 나타난다.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경사가 험해진다. 11시간 성곽 길을 걷는 내내 목을 축여줬던 가방 속 물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동행한 이들과 속도를 맞춰 급하게 산을 오르다 보면 풍경을 죄다 놓치고 땅만 보고 걷기 십상이다. 이 때 한번씩 뒤를 돌아보면 색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인왕산 바로 직전에 올랐던 북악산이 넓게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매일 출·퇴근하던 서울 중심부가 보인다. 내일 다시 돌아갈 일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여유롭게 관망하는 제3자의 심정이 된다. 오른쪽으로는 부암동, 평창동의 멋진 개인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인왕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앉아 찍은 서울
인왕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앉아 찍은 서울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더 넓어진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바위에 올라앉아 360도를 한번 돌아보면 산 중턱에서 볼 때보다 서울 시내가 더 넓게 펼쳐진다. 안산, 낙산은 물론이고 북쪽으로 홍제동 아파트 단지도 보인다. 시야가 확 트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싶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성곽 바깥 부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어서다. 정상에서 치마바위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는 구간에서 볼 수 있다. 성곽을 구성하는 성돌의 색깔이 위와 아래가 다르다. 윗 성돌은 쌓인지 얼마 안돼 하얀색인데, 아래로 갈수록 누렇다 못해 까만 색을 띈다.


딜쿠샤 / 사진=박정엽 기자 parkjeongyeop@chosunbiz.com
딜쿠샤 / 사진=박정엽 기자 parkjeongyeop@chosunbiz.com

산행을 마쳤다고 끝이 아니다. 시내로 나가는 길, 독립문 근처에 있는 테일러 가옥(딜쿠샤)은 놓치면 아쉬운 볼 거리다. 늘 봐왔던 비슷비슷한 모양의 주택들 사이에서 딱 봐도 눈에 띄는 붉은 벽돌집이다. 미국 만화에 나오는 교회나 성당 같기도 하다. 1919년 미국 한 통신사의 서울 특파원으로 일했던 앨버트 테일러가 짓고, 살았던 서양식 건축물이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딜쿠샤 근처에 봉선화, 고향의 봄 등을 작곡한 홍난파 가옥도 있다. 그의 대표곡이 대부분 이 아담한 벽돌집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30년에 독일 선교사가 만들었는데 당시 서양식 주택 특성이 잘 보존돼 있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90호로 민간 소유 였다가 2004년 종로구가 매입했다.

이현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