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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순성기] ⑤4.19때 총상입은 인왕산 '할머니슈퍼' 여주인

바람아님 2015. 7. 18. 10:18

조선비즈 : 2015.07.11


서울 인왕산자락을 따라 도미노처럼 놓인 성곽을 내려오면 구멍가게 하나를 볼 수 있다. 이름이 '할머니슈퍼'다. 워낙 가게가 작아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인왕산 자락을 자주 찾는 등산객들에겐 유명한 가게다.

지나 6월 26일 서울 성곽을 내려오는 길에 가게에 들어섰다. 백발이 된 할머니 한 분이 한발짝 한발짝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아이스크림 몇개와 음료수 몇개를 사서 얼마냐고 할머니에게 물으니 1분 안돼 계산을 마쳤다. 거스름돈도 척척 내놓았다. ‘할머니슈퍼’의 주인인 김정자 할머니다.

◆6.25로 남편 잃고 4.19혁명 때 총상 입은 현대사 산증인 ‘김정자 할머니’





김 할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91세다. 행촌동 고개넘어 위치한 지금 그 자리에서 40년 넘게 74세 딸과 함께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는 당시 나이 17세에 딸을 낳았다. 이후 잠시 떨어져 살다가 딸이 16세 되던 해 서울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33살에 먼저 서울로 올라왔고 이듬해 16살 딸을 데리고 왔다.

김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온 계기는 남편의 갑작스런 납북때문이었다. 김 할머니가 충남 예산에 살 때 남편은 퇴군하는 북한군에 끌려 납북됐다. 생사도 모르는 남편을 찾았지만 북한군에 끌려간 남편은 오리무중이었다. 당시 할머니 나이는 25세였다.

그렇게 혼자 지내던 할머니는 1950년대 후반, 명동에서 소위 '돈놀이'를 하던 ‘김 여인’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김 할머니는 김 여인이 머물렀던 주인 집의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그 이듬해 16세 딸을 데리고 왔고 행촌동 자락에서 가게를 차렸다. 그러던 중 1960년 4.19혁명이 터졌다.

당시 김 할머니는 동네 여인들과 함께 과거 금천교 자락 시장을 구경중이었다. 그러다 뭔가가 어깨로 날아들어왔다. 총알이었다. 금세 붉은 피가 옷을 적셨다.

할머니는 학생들의 도움으로 동숭동 서울대병원으로 실려갔다. 할머니 어깨를 맞춘 총알은 옆구리에 머물렀고 조금만 가까이 맞았다면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 김 할머니는 "그때 의사가 ‘총알도 할머니를 잘 피해갔다’라고 말했어"라며 웃었다. 할머니는 그 사건 이후 4.19 유공자로 등록돼 지금도 월 100만원 넘은 연금을 받고 있다.

◆명동주먹 김두한이 좋아한 17살 소녀


[한양순성기] ⑤4.19때 총상입은 인왕산 '할머니슈퍼' 여주인

김 할머니의 딸 역시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김 여인’에 이끌려 명동 소재 ‘향원’이라는 음식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향원이라는 식당은 당시 한정식 집으로 김두한을 비롯한 명동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지역 유지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유명한 곳이었다. 김 할머니 딸은 "내가 당시 예쁘게 생겨서 음식점(향원)에 가면 김두한이 나에게 용돈도 주고 어린이 대공원도 데려가 주곤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없어진 향원은 지난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원충연 대령(당시45세)과 이인수 대령(35세)이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다. 원 대령과 이 대령은 1965년 5월 10일 향원에 모여 당시 정권을 비판하며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당시 정부는 원 대령을 포함한 장교 6명과 예비역 군인 1명을 체포했다. 원 대령은 사형선고를, 이 대령은 무기징역을 받았고 그 둘은 1981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할머니슈퍼' 여주인들은 한 자리에서 40년을 보내면서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평당 7만원하던 땅값은 이제 천만원을 넘어갔다. 넝마주이들이 모여살던 가게 앞 공터는 이제 연립주택단지가 됐다. 자동차가 지나지 못했던 울퉁불퉁했던 흙길도 깨끗하게 정비됐다. 바로 옆에 있던 '옥경이슈퍼'도 3년 전에 대기업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할머니슈퍼 매상을 갑절로 올려줬던 성정여중도 이제는 다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았다.

현대사의 풍파를 직접 체험한 두 여인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다. 그들은 현재도 역사를 기록하며 서울 북쪽 끝자락에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조용하게 살고 있다. 김 할머니는 “다 잊었던 줄 알았던 옛일이 오늘은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라며 “이제 살만큼 살았지만 남은 소원은 딸과 100살까지만 이 가게를 운영하는 거야”라고 수줍게 말했다. 

김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