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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순성기] ③30년 전 골목 속으로, 낙산 성곽길

바람아님 2015. 7. 15. 09:37
정미하 기자

조선비즈 : 2015.07.11


흥인지문 사거리에서 북쪽을 보고 1시 방향을 바라보면 회색 아스팔트 위로 푸른 언덕이 손짓한다. 2014년 동대문교회가 철거되고 조성된 동대문성곽공원 동쪽에는 흥인지문에서 끊긴 한양 도성 일부가 고개를 내민다.

성곽을 따라 한양도성박물관(옛 이화여대병원)을 지나쳐 5분여를 걸었을까. 매끈한 아스팔트 대신 우둘투둘 시멘트 바닥이 발바닥에 와닿는다. 길 바닥에는 회색과 짙은 회색, 갈색때를 머금은 회색 등 투박한 시멘트들이 퍼즐맞추기를 하고 누워있다. 그 너머로 성인 어깨높이의 성곽이 보인다. 600년 넘게 자리를 지킨 때묻은 돌담은 이곳이 4대문 안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이화마을이란 이름은 조선시대에 살구나무가 많이 자라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도성 한양의 외곽 마을이었던 이화마을. 서울이 강남 등으로 커지면서 4대문 안은 서울의 중심부로 거듭났고 땅값은 치솟았다.

 
 
조선시대 도성 한양의 좌청룡 낙산 서쪽 꼭대기, 이화마을 꼭대기의 집들은 한양도성의 성곽을 마주보고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해발 125m, 600년 역사를 지닌 한양 도성의 좌청룡 낙산 서쪽 이화마을, 그 중에서도 꼭대기 마을은 성곽 안쪽에 있지만 여전히 서민의 점유지대다. 1950년대 후반 판자촌이 세워진 이화마을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얼기설기 얽혀있는 전기줄은 경사면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오간다. 경사를 따라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은 2층을 넘지 않는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1970년대식 2층 벽돌 건물은 2015년 서울 도심을 먼 미래의 일마냥 내려다보고 있다. 지척으로 내려다보이는 쇼핑의 메카 동대문도, 아파트 단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성벽 넘어 창신동도 먼나라 이야기다.

낙산 성곽의 동쪽 외곽에 자리잡은 창신동에는 15층 높이의 아파트가 줄을 지어 서있다. 낙산 성곽 바깥으로 딱 붙어 지어진 빌라의 높이는 최소 5층이다. 게다가 창신동 아파트와 빌라는 지어지지 얼마되지 않은 듯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낙산 성곽 붙어서서 좀 더 시선을 멀리두면 왕십리 재개발 지역에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서있는 크레인이 보인다. 이 모두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이화마을 꼭대기 마을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8만원.  이화마을 꼭대기에는 손글씨로 서울 4대문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격의 월세방이 있다는 것을 손으로 써서 알리는 종이가 곳곳에 붙어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8만원. 이화마을 꼭대기에는 손글씨로 서울 4대문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격의 월세방이 있다는 것을 손으로 써서 알리는 종이가 곳곳에 붙어있다.

 

이화마을 꼭대기에는 아이보리색으로 변한 흰색 페인트가 벗겨진 벽면에는 빈 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있다. 집에서 뒹구는 종이에 손으로 적었을 법한 종이 한 장은 비와 바람에 씻겨 누렇게 변한 나무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월세방 100-18만원’, ‘월세 큰방 1개, 부엌, 욕실, 200-25만원’. 서울 4대문 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가격은 일시적으로 현실감각을 잊게 한다.

옆동네 창신동 원룸 월세 가격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다. 창신동보다 북쪽에 있는 보문동 원룸도 시세가 비슷하다. 비교적 저렴한 방이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 수준이다. 이화마을 아랫동네로만 내려가도 집값은 뛴다. 원룸 전세가 750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이곳은 목돈이 없는 이, 하루벌어 하루살아가는 힘겨운 이들의 일상을 보듬을 수 있다는 것을 종이 한 장이 보여주는 셈이다.

집 현관 앞에 놓아둔 화분과 꽃들은 동네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집 현관 앞에 놓아둔 화분과 꽃들은 동네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적갈색 벽돌로 쌓아올린 뒤 1층과 2층 사이, 옥상 부분에 공을 들여 칠했을 새하얀 페인트는 지난 세월만큼의 검은 얼룩을 머금었다. 집 벽을 타고 올라가는 갈색 가스배관이 이 동네가 누군가의 보금자리임을 짐작하게 한다.

성곽을 따라 30도 경사를 따라올라가다보면 마치 하늘에 닿을 듯한 착각이 든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낙산 구간의 성곽은 세월의 때를 머금어 멋을 더한다. 성곽을 마주보고 자리잡은 마을의 집도 나이를 먹기는 마찬가지다. 벽에 칠한 페인트는 이미 빛을 바랜지 오래다. 벽에 덧칠한 시멘트마저 부스러져 이곳저곳 회색 이빨을 드려내고 있다.

새로움을 더하는 것은 한 집 걸러 놓여있는 현관문 앞의 화분. 갈림길에 심어져있는 나무의 푸른 잎, 현관 앞에 놓여있는 무릎 높이의 꽃 화분은 무채색의 마을에 유채색 물감을 칠한 효과를 준다. 특이하게도 이화마을 윗동네 마을의 집들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길에 닿는 구조로 지어져 있다. 이 마을의 집 앞마당은 현관문과 성곽 사이, 5m 남짓한 거리 자체다.

그렇게 2Km 남짓을 걸었을까. 2006년 화가 한젬마씨 등 68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낙산 공공 프로젝트’ 이후 동네 곳곳이 벽화로 채워진 이화동벽화마을로 내려가는 알림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화동 아랫마을로 향하는 알림판은 이화마을 꼭대기 동네의 적막감과 고요함과의 작별을 말한다.

이화마을 꼭대기에 가면 600년 한양 도성의 흔적은 물론 30여전 마을이 때를 묻어 보존돼있는 모습을 덤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