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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삼복더위에 看書痴(간서치)

바람아님 2015. 7. 24. 07:43

(출처-영남일보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홍보마케팅 팀장)


초복이 지나고 중복이 다가온다. 
유난히 더위에 맥을 못 추는 나는 어떻게든 이 계절을 잘 넘기고 보자는 
생각으로, 한동안 ‘여름잠’에라도 빠졌다가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깨어나고 싶다. 이런저런 궁리에도 막상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던 
터에 옛사람들의 피서방법을 찾아보았다.

먼저, 정조대왕이다. 
신하들의 눈에 비친 대왕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일득록(日得錄)’이 있는데, ‘독서’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젊어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여 바쁘고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날마다 정해 놓은 분량을 채웠다’며, 더위를 물리치는 데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추천한다. 왜냐하면 독서를 통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에 바깥의 더운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숙종 때의 선비 윤증(尹拯)이다. 
임금이 내린 벼슬을 18번이나 사양했으며, 산촌에 묻혀 학문에 열중했다던 
그의 시 가운데 ‘더위(暑)’를 보자.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다.’ 
역시 독서삼매가 최고의 피서법이라는 것이다. 

내친김에 다산 정약용의 더위를 몰아내는 여덟 가지 방법인 ‘소서팔사(消暑八事)’까지 읽어본다.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등에다 비 오는 날 시 짓기까지 있다. 
비 오는 날 시를 짓는 것도 좋겠지만, 그만한 역량이 안 된다면 남의 좋은 시를 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이덕무는 어려서부터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고, 
자신의 방에 앉아 동쪽에서 서쪽까지 볕이 드는 방향을 따라가며 온종일 책만 읽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의미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될 것이다.’ 
이덕무의 조언이다.

올여름, 더 이상 다른 피서방법은 찾지 않을 작정이다. 
하루 온종일 유혹하는 TV와 손바닥 위에까지 올라와 눈길을 잡아채는 인터넷을 물리치고, 
선조들을 본받아 간서치가 되어보기로 한다. 
하필이면 같은 날 겹쳐서 덤벼드는 중복과 대서를 지나고, 말복을 지나 처서를 맞이할 때까지만이라도.



<게시자 추가 자료>

다산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8가지 피서법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소나무 단(壇)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