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윤평중 칼럼] 중국 짝사랑 DNA

바람아님 2015. 9. 25. 10:44

(출처-조선일보 2015.09.25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美軍 있는 통일 한국 용인 않는 中 입장과 '흡수 통일'은 상충
국제정치적 현실주의 기초해 지나친 민족주의 가라앉히고
외교 화법 속 中 본심 꿰뚫어 전략엔 전략으로 대응해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진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발언이다. 

한국 조야(朝野)에 널리 퍼진 중국에 대한 장밋빛 기대의 압축판이다. 

골칫거리인 북한을 중국이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소망이다. 하지만 냉엄한 국제 정치는 

이런 낙관론을 거부한다. 한국 주도의 통일 시나리오를 중국이 인정한다는 증거도 없다.

한·중 수교 이래 일관된 중국의 태도는 명확하다. 

'한민족에 의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며 무서운 복선(伏線)을 깔고 있다. 

남북 어느 일방에 의한 무력 통일이나 폭력적 과정을 수반한 흡수 통일을 반대하며, 

한반도 급변 사태 시 외세(外勢) 개입도 반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결국 미군이 있는 통일 한국을 용인치 않겠다는 것이 '제국(帝國) 중국'의 마지노선이다. 

60여 년 전 6·25전쟁에서 행동으로 보여준 그대로다.

'핵보유국 북한'의 등장으로 남북 합의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현실적 선택은 북을 평화적으로 흡수 통일하는 길밖에 없다. 

"통일이야말로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있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시진핑의 외교적 수사(修辭)가 감추고 있는 중국의 국가적 이해관계가 박 대통령의 

흡수 통일안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과 지도자가 통일의 기초를 쌓으려면 '중국 짝사랑'의 소망사고(所望思考)부터 넘어서야 한다. 

극진한 외교적 대접과 국가 대전략을 냉정히 구별해야 한다. 

중국의 현란한 화술(話術)에 휘둘리는 2015년의 한국 풍경은 1880년 주일 중국 공사 하여장(何如璋)이 영국 공사에게 

뱉은 말을 연상시킨다. 

"은연중 힘을 과시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면 쉽게 따르는 한국인들이 마치 어린애 같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제국 중국이 설정한 중화 질서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선진 문화 흡수와 약소국 생존을 위한 실용 차원을 훨씬 넘어선 적극적 수용이었다. 

중국을 문명의 표준으로 여겨 사대(事大)하면서 소중화(小中華)임을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1644년 명나라 멸망 이후 우리의 소중화 의식은 '작은 중국'의 자화상까지 낳았다. 

중국 주위의 비한족(非漢族)이 전성기에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며 황제를 자칭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스스로를 

동국(東國)이라 부르며 제후국에 머물렀다. 

골수(骨髓)에 맺힌 중국 짝사랑이었다.

그러나 옛 한반도의 '중국 짝사랑 DNA'를 오늘 재현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며 오히려 통일에 방해가 될 뿐이다. 

한국이 이룬 민주화와 산업화의 동반 성취는 중국에는 불가능한 꿈이다. 

중국의 민주화가 제국 중국의 해체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제외한다면 한국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해야 할 까닭이 전혀 없다. 

G2 중국의 세계 전략을 우리만의 소망사고로 굴절시켜 해석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일본의 보통 군사 국가화에 분노하는 한국인의 감정적 반응도 우리에게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민족주의적 열정이 너무 앞서면 통일 대국(大局)을 그르친다.

7세기 삼국 통일은 21세기 남북통일과 한·중 관계의 길을 비춰주는 모델이다. 

국제 정치적 현실주의로 역사적 비전을 이끌어야만 통일의 길이 마련된다. 

그런 정치적 현실주의의 기본 전제는 제국 중국이 한반도 운명의 순간에 무력 개입하기 일쑤였다는 사실이다. 

7세기에 이어 16세기 임진왜란, 17세기 병자호란, 19세기 청일전쟁, 20세기 6·25전쟁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고구려·백제 멸망 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한 당(唐)에 담대히 맞선 신라의 대응은 아주 달랐다. 

유연한 외교와 결연한 전쟁으로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을 창조해냈다. 

당을 무력으로 쫓아낸 신라 자신의 비르투(virtu·역량)에 토번(吐蕃)의 북방 침공이라는 포르투나(fortuna·행운)가 더해져 

당대 최강의 당 제국조차 통일 신라를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현대는 과거와 다르지만 약육강식의 무법 상태인 국제 정치와 역사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제국 짝사랑으로 대한민국의 국가 전략을 침윤시키는 건 참으로 위태로운 일이다. 

중국의 전략에는 전략으로 대응해야 마땅하다. 

중국 짝사랑 DNA를 벗어던져야 한국은 비로소 성인(成人)이 된다. 

남북통일은 우리 현대사 최대의 결정적 순간이다. 

진짜배기 어른이 된 한국만이 마침내 통일 대업(大業)을 창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