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한국 양궁의 힘

바람아님 2016. 8. 9. 06:34

(출처-조선일보 2016.08.09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실제 양궁 사대(射臺)에 서보니 70m 떨어진 한가운데 10점 과녁이 희미한 점으로 보였다. 지름 12.2㎝다. 

동심원 열 개를 그려놓은 전체 과녁도 지름이 1m22cm밖에 안 된다. 

22㎏쯤의 힘으로 시위를 당겼다 놓으면 화살은 최대 시속 240km로 날아간다. 

초보자는 시위 당기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야구 선수 김현수가 기보배의 활을 당겨보려다 "어, 이거 왜 이래" 하며 쩔쩔맨 일이 있다.


▶양궁은 순간마다 방향과 세기가 바뀌는 바람과의 싸움이다. 

사대와 과녁 주변 풍향이 달라 정밀한 오(誤)조준이 필요하다. 

남자 대표 김우진은 "끝없는 훈련으로 터득한 감(感)으로 쏜다"고 했다. 

리우 양궁 경기장은 "바람이 오묘하다"는 곳이다. 

수시로 바람이 오락가락해 예선 경기장과 16강 이상 경기장이 또 다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그런 리우에서 한국 신궁(神弓)들이 이틀 내리 10점 과녁을 뚫었다. 

여자는 단체전 시작한 88 서울올림픽 이래 8연패를 했다. 

남자 단체도 여덟 차례 대회에서 다섯 번 우승했다. 로이터통신은 "무자비한 한국 양궁"이라고 했다. 

미국 남자 대표팀은 퇴역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바람 훈련도 하고 왔다. 

팬들을 미드웨이호에 초청해 "리우에 대비해 소리 높여 응원해달라"고 했다. 

그 유별난 훈련의 원조가 한국이다. 

야구장이나 군부대에서 확성기, 호루라기 소리에 관중 야유까지 들으며 활을 쏜다. 

미국 감독은 80~90년대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기식 감독이다.


▶한국 양궁은 갖가지 기행(奇行)으로도 유명하다. 

특수부대 극한 훈련, 한밤 공동묘지 다니기, 옷 속에 뱀 집어넣기…. 어떤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할 배포 키우기다. 

덕분에 김수녕부터 박성현까지 "가슴 떨리는 순간 자신 있게 시위를 당기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나치다는 말도 있었지만 외국에선 다투어 따라 했다. 

중국 양궁팀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동물원에서 사자 꼬리까지 잡아봤다고 한다.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 리우 양궁장을 재현해놓고 훈련했다. 

실제 경기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게 하고 뇌파를 측정해 스스로 집중력을 높이도록 했다. 

시위를 놓는 적절한 타이밍도 뇌파 분석으로 찾아냈다. 

아침엔 '활쏘기' '공 띄우기' 같은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뇌 워밍업을 했다. 

양궁 대표팀을 지원하는 현대차연구소의 '과학화 프로젝트'다. 

기보배는 "게임하는 게 훈련이라니 신기하더라"고 했다. 

얼마 안 있으면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외국 양궁팀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주몽의 후예들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