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9.29 제주=양지호 기자/사진=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구성=뉴스콘텐츠팀)
四多島 제주… 바람 돌 여자 그리고 미술관 이중섭, 장리석, 변시지, 이왈종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추사 김정희까지… 인구 8000명당 1개꼴로 있는 제주의 미술관 미술관 옥상에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와 섶섬… 여유 없고 복작대는 풍경에 지쳤을 때, 미술관으로 간다. 그동안 몰랐던 모습이 펼쳐진다. |
제주의 '여유'가 그립다… 나만의 공간을 찾으러 간다
바람·돌·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지만 여기 하나를 더 추가해 사다도(四多島)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바로 미술관이다.
제주도에는 인구 8000명당 1개꼴로 미술관·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 평균 5만2000명당 1곳보다 훨씬 많다.
제주도는 숱한 작가들을 품었다.
이중섭, 장리석, 변시지, 이왈종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추사 김정희까지.
왜 제주도까지 와서 미술관에 가느냐고. 제주도는 이제 미술의 섬이기 때문이다.
봄 미술관 김호득 ‘흔들림-문득’.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작업실에서 미술관으로
애월읍, 세화리, 월정리 같은 ‘카페 밀집 지역’은 눈 딱 감고 건너뛴다. 서귀포 ‘제주 봄 미술관’이 첫 목적지다.
이화여대 교수였던 박충흠 작가는 제주도에 내려와 20년 가까이 살면서 작업실 옆에 숙소 봄 스테이와 함께 봄 미술관을
지었다. 작가는 “마음 편히 작업할 공간을 찾아서 1998년 제주에 처음 자리를 잡았는데 아예 뿌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무료 개방 미술관이지만 아무 때나 문을 열지 않는다. ‘봄 스테이’ 투숙객과 사전에 전화로 예약한 사람을 모아 하루에
한 번가량 투어를 진행한다.
미술관 내부에는 2개의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물에 그리는 수묵화’로 유명한 동양화가 김호득 작가의 작품이 먼저.
먹을 풀어 칠흑 같은 물 위로 천장에 매달린 수십 장의 화선지가 수직으로 계단 형태를 이루며 내려온다.
물에 반사된 화선지 형태가 어떤 심연으로 통하는 길 같은 모습을 그린다. 묵향이 방 안을 채웠다.
바닥에 놓인 물이 파문을 일으킨다.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 공간을 지배한다.
제주 서귀포 ‘봄 미술관’에 있는 박충흠 작가의 ‘무제’. 얇은 동판을 용접해 붙인 구조물 속에 전구를 설치해 빛 무늬가 펼쳐진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커튼 너머 다음 방에는 이 미술관 주인이자 조각가인 박충흠 작가의 동판 조각이 빛을 발한다.
삼각형과 사각형의 동판을 이어붙인 틈새로 빛이 퍼져 나와 밝은 무늬를 만든다. 빛을 가두는 듯한 김호득 작가의 작품이
음(陰)이라면 박충흠 작가의 작품은 빛을 발산하는 양(陽)이다. 어둠과 빛으로 완성되는 미술 작품을 조용히 바라본다.
미술관 옥상에 서면 그의 동판 조각 너머로 서귀포 앞바다와 섶섬이 보인다.
왈종미술관.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 정방폭포 근처에 있는 왈종미술관도 비슷한 사례다. 이왈종 작가는 2012년 제주 작업실이 있던
자리에 도자기 모양을 본뜬 왈종미술관을 개관했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특징인 화백의 회화와 도자 작품이 미술관을 가득
채웠다. ‘19세 미만 관람불가’라고 적힌 전시실이 특히 인기.
이규선 왈종미술관 실장은 “정방폭포 주차장은 성수기에는 주차장 바깥까지 차가 늘어서는 곳인데 왈종미술관은
성수기에도 상대적으로 한적해 즐기기 좋다”고 했다.
제주가 마냥 좋아서 한림읍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갤러리 노리’를 차린 중견화가 이명복도 작업실 겸 갤러리를 차린 사람이다. 2010년부터 전시회를 여는데 지역 예술인 사이에서 평이 높다.
◇제주가 품었던 사람들의 미술관
6·25전쟁 당시 제주로 피란했던 작가들을 품은 땅이 제주도다. 대표적인 작가가 이중섭.
그는 서귀포에서 피란생활을 하며 은지화 작품을 다수 남겼다.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은 당시 그가 그렸던 은지화 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김창열미술관 김창열 ‘의식’.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제주 서귀포 자구리해안에 있는 정미진 작가의‘게 와 아이들’. 이중섭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4일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게 된 김창열 화백은 경찰 신분으로 1952년 즈음 1년 6개월간 제주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그는 피란 왔을 때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됐고, 생전의 이중섭 선생도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그는 작품 220점을 기증했고 제주시가 이를 받아 제주 한림읍 중산간지대에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도립김창열미술관을 만들었다. 제주도의 매력에 반한 탓일까.
그는 “프랑스에서 45년 살았다. 그 두 분의 감동이 계속 영향을 미쳤다.
이국 생활이 유배 생활과 다름없어 종착지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제주가 됐다”고 했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 있는 장후안의‘영 웅 No.2’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때로는 한 사람의 의지가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2.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네 곳 중 가장 최근 개관한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2’에서는
5월부터 ‘실연에 관한 박물관(Museum of Lost Relationship)’ 전시를 하고 있다. 연인과의 헤어짐을 뜻하는 실연이 아니다.
영어 원문이 뜻하듯 잃어버린 관계를 추억하는 공간이다.
미니어처 가구, 스웨터, 요트 모형, 심지어 고소장까지 각양각색의 물건이 ‘나 사연 있소’라고 말하는 듯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물건에 얽힌 사연은 전자책을 통해 읽는데 읽다가 순간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반응이 좋아 전시를 10월 말까지 연장했다.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김진우 ‘아트로봇展’.
덕판배미술관.
서귀포 칠십리시공원 전종철 ‘경계선 사이에서’.
제주현대미술관.
제주 현대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에 있는 돌하르방 조형물.
제주도가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 많다.
저가 항공사가 등장해 2만~3만원대 비행기표를 내놓고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작년 제주도 방문객은
1300만명을 넘겼다. 2005년 500만명 수준이었으니 10년 사이 관광객이 2배 이상으로 폭증한 셈이다.
아이돌그룹 멤버 지드래곤이 애월에 차렸다는 카페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여유 없고 복작대는 풍경에 지쳤을 때, 미술관으로 간다. 그동안 몰랐던 모습이 펼쳐진다.
'記行·탐방·名畵 > 기행·여행.축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심 단풍에 취해볼까..서울시, 예쁜 단풍길 105곳 선정 (0) | 2016.10.18 |
---|---|
물감에 풍덩 빠졌다 나온듯..주말 이틀 설악산 단풍에 10만명 (0) | 2016.10.17 |
'속리산 세조길에서 우이령까지'..걷기좋은 단풍길 10선 (0) | 2016.10.10 |
정선 민둥산엔 바다가 있다, 억새 물결치는… (0) | 2016.10.03 |
46년 만이군요, 한눈에 보는 만 가지 비경 (0) | 2016.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