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9 안석배 논설위원)
'연구실 없어 떠도는 유랑(流浪) 교수가 많다. 교실이 좁아 시험 때면 다른 곳에서 의자를 가져와야 한다. 도서관은 휴일엔 문 닫고 평일에도 10시간만 연다.' 2006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파리 10대학 낭테르캠퍼스 풍경이다. 신문은 이 대학이 재정 부족에다 조직도 엉망이며 변화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르본 대학에서는 지우개가 없어 대걸레로 칠판을 지운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1968년 학생혁명 이후 학비가 거의 무료가 되면서 달라져 간 프랑스 대학 풍경이다.
▶한국에서 대학등록금이 정치권 이슈가 된 것은 5~6년 전이다. 일 년에 1000만원 학비로 서민은 물론 중산층 가정도 휘청했다. OECD 통계로 한국 사립대 등록금은 미국 대학에 이어 둘째로 비싸다. 빚내고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는 청년들이 대거 생겨났다. 때맞춰 정부와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국내 350여 개 대학(전문대 포함)의 한 해 등록금 규모가 14조원이다.
그 절반인 7조원을 나라와 대학이 부담하겠다는 게 정부 '반값 등록금' 개념이다. 지난해 그 정책이 완성됐다.
정부가 4조원, 대학에서 3조원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들이 "힘들다"고 난리다.
반값 등록금에 돈을 쏟아부으니 정작 필요한 곳에 쓸 돈이 없다고 한다. 40명 듣던 수업을 120명 대형 강의로 바꾸고,
실험·실습장비 구입을 올스톱한 학교도 있다. 한 대학 총장이 한숨을 쉰다.
"요즘 대학은 건물만 멀쩡히 있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예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달 초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했다.
2011년 시장 선거 때 그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걸었다. 당연히 학생들이 반길 것으로 봤는데 꼭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엊그제부터 이 대학 총학생회가 설문 조사를 하고 있는데 '무상 등록금' 반대가 찬성보다 많다고 한다.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으로) 대형 강의가 많아지면서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졌다"고 불만을 말한다.
▶반값·무상은 선거철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단골 메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또 비슷한 공약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에 브레이크를 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 질(質) 떨어지는데 공짜·반값 해서 뭐하겠느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꼭 등록금 정책만 그럴까. 급식·의료·보육·주택·… 최근 몇 년 새 예산 쏟아부어 급조된 정책들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참에 '반값' '무상'을 갖다 붙인 모든 정책을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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