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보문산 감나무집서 73년 대면벽엔 둥근 원 색색으로 그려져 있어"나는 영의 세계에서 온 칙사" 주장무당들 사이 "영력 대단하다" 소문서울서 다시 만난 최태민 위풍당당"근혜양과 일해 청와대 무단출입"주변에 그의 '무당' 과거 털어놓자중정 이모 과장 "몸조심하라" 경고
신흥종교·이단 전문가 탁명환씨 생전에 쓴 최태민 숨겨진 이야기
신흥종교·이단문제 전문가인 탁명환(1937~94) 소장이 최태민(1912~94)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이름은 ‘최태민’이 아니라 ‘원자경’이었다. 계룡산 주변에 산재한 신흥종교 문제를 파고들던 탁 소장은 대전일보에 실린 광고를 보고 대전 보문산 골짜기에 있던 감나무집(대전시 대사동 196)을 직접 찾아갔다. 탁 소장은 거기서 원자경을 만났다. “거기에서 머리가 시원스럽게 벗겨진 문제의 칙사님인 원자경씨를 최초로 만났다”고 탁 소장은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기록해 두었다. 88년 탁 소장이 ‘최태민과 구국선교단·구국십자군’을 해부한 기록이다. 탁 소장이 만난 최태민,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영세계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 이 고장에 오시어 수천년간 이루지 못하며 바라고 바라든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서 즉각 실천시킨다 하오니 모두 참석하시와 칙사님의 조화를 직접 보시라 합니다.’
탁 소장은 대전 시내로 옮긴 원자경의 거처도 수차례 찾아갔다. 원자경은 거기서도 벽에다 둥근 원을 그려 놓고 사람들에게 ‘나무자비 조화불’을 외우면서 응시하게 했다. 여기서 탁 소장은 원자경이 무당을 상대하는 광경을 보고 ‘한 가지 특이한 일’이라며 이렇게 기록했다. ‘잡신을 섬기는 무당이 원 교주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벌벌 긴다는 사실이다. 처음 만난 무당도 그에게 절을 하고, 그의 치료를 받으면 신기(神氣)가 떨어져 무당업을 폐업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탁 소장은 “그에게 소위 ‘영력(靈力)’이 어느 정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역사와는 다르다고 했다. 일종의 대(大)무당인 셈이다. 74년에는 원자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탁 소장과 원자경은 이화여대 앞 제과점에서 만났다. 이날 원자경은 “한민족에게 특별한 사명이 있다. 나는 영세계 칙사관의 대사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만난 뒤 두 사람은 서로 연락이 끊겼다.
정국은 유신체제로 접어들었다. 75년 교계 신문에는 일제히 ‘대한구국십자군’ 기사가 실렸다. 총재의 이름은 ‘최태민(崔太敏)’이었다. 탁 소장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얼굴은 낯이 익었다. 다만 검은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예전과 달랐다. 최태민은 다름 아닌 원자경이었다. 탁 소장은 그 길로 서울역 뒤편의 빌딩에 있던 대한구국십자군 본부를 찾아갔다. 전화를 하자 최태민은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탁소장! 生(최태민 자신을 가리킴)은 탁소장 아시다싶히 무슨 교단과 교리를 갖고 선교단을 이끌고 감이 아니고 순수히 반공단체 이온데 근래 탁소장이 구국선교단과 生에 대하여 모함을 한다는 말을 목사들한테서 전해 듣고 심히 불쾌했읍니다 … 이곳에 심방했다가 부재중이기에 돌아갑니다. 일차 상면을 원합니다. …’
최태민은 ‘목사’ 직함을 쓰고 있었다. 10만원을 내면 목사 안수를 받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최태민은 헌금을 내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탁 소장은 “측근으로부터 (최태민이) 예장 종합총회 조현종씨로부터 안수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후 최태민과 알력 때문에 제주도에서 (목사 안수를 준) 조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최태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당시 최태민의 세도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것이었다”고 했다.
당시 최태민이 꾸린 조직은 ‘십자군’을 표방했다. 명칭도 ‘구국(求國)십자군’이었다. 구국십자군은 모두 카키색 군복을 입고 어깨에 십자가 모양의 별을 달고 다녔다. 언뜻 보면 군 장성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탁 소장은 이에 얽힌 일화도 하나 소개했다.
천안에 있는 모 목사가 구국십자군 군복에 십자가 별을 달고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당시 제3한강교를 지나기 전에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은 헌병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헌병은 버스에 올라 검문을 하다가 중장 계급장을 어깨에 단 사람을 발견했다. 앞에 가서 거수경례를 하고 물었다. “장군님, 실례합니다. 검문을 하겠습니다.” 3성 장군이 설마 고속버스로 이동할까 싶어 수상하게 여겼던 터였다.
그러자 그 목사는 화를 벌컥 내며 “새까만 졸병 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검문을 하겠다는 거야?”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래도 헌병은 굽히지 않고 목사를 차에서 하차시키고 검문을 했다. 조사 결과 구국십자군 지역사령관으로 밝혀졌다. 탁 소장은 “그 사건 이후 구국십자군이 어깨에 달던 십자가별이 없어졌다”고 밝혔다.최태민이 목사 두 명을 대동하고 탁 소장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최태민의 과거는 당신들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말한 탁 소장은 몇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첫째 목사직을 사퇴하고 평신도로 돌아갈 것, 둘째 칙사론 교리의 주장 중지, 셋째 평신도로서 교회에 출석할 것 등이었다. 동행한 목사 중 한 사람이 “탁 소장! 말조심하시오. 지금 이분이 어떤 분이시라고? 함부로 말이면 다하는 거요. 그런 식으로 하면 탁 소장 신상에 좋지 않아요”라며 협박을 했다. 탁 소장은 “진짜 목사가 가짜 목사를 비호하고 두둔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가짜 목사’ 최태민 주위에는 유신 치하에서 권력에 편승하려는 ‘진짜 목사’들도 적잖이 있었다.
■◆탁명환 소장
정리=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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