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11-24 03:00:00
서울대병원의 옛 대한의원 본관 시계탑(1908년 건축).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늘 붐비고, 늘 급박하게 돌아가는 그곳의 한쪽에 고즈넉한 건물이 하나 있다. 1908년 대한제국의 국립병원으로 세워진 옛 대한의원의 본관이다. 바로크 양식에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품격을 자랑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의원과 경성제국대병원을 거쳐 광복 후 서울대병원 본관으로 활용되었다. 지금은 의학박물관과 의학역사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한의원 본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건물 중앙에 우뚝 솟은 시계탑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시계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현재 시계탑 벽면에 노출된 시계는 1981년에 새로 설치한 전자식 시계다. 건물을 지을 때 설치했던 애초의 시계는 2014년 작동 가능한 상태로 수리 복원해 시계탑 내부에 전시해 놓았다. 관람도 가능하다. 이 대형 탑시계는 기계식이다. 25kg의 대형 시계추를 10m 정도 끌어올리면 그 추가 중력에 의해 내려오는 힘으로 롤러를 일정하게 돌리면서 시계가 작동한다. 복원 수리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이 시계를 1907, 1908년경 영국에 주문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한의원 건물이 들어선 이곳은 야트막한 언덕이다. 지금은 주변에 병원 건물들이 높게 들어섰지만 1908년 당시엔 시계탑이 단연 독보적이었다. 멀리서도 시계탑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그럼 왜, 이 높은 곳에 시계탑을 설치했던 것일까. 근대기 이전, 시간에 관한 정보는 일종의 권력이었고 그래서 지배층이 이를 독점하고자 했다. 높은 곳에 시계탑을 설치한 것은 시간을 시민과 공유하겠다는 의미였다. 그건 결국 근대를 향한 대한제국의 열망이었다.
대한의원 시계탑 내부로 올라가려면 나무 계단을 밟아야 한다. 나무 계단의 삐걱대는 소리. 100년 넘는 시간을 건너가는 기분이다. 매력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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