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3.13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목표 세우고 할당량 관리하는 '집단 행복 시스템'으로 국가가 국민 간섭하기보다는
개인 권리와 자유 보호하고 각자는 타인 시선 연연 말고 자신만의 즐거움 찾아 나서야
행복엔 역설적인 면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행복 자체를 큰 목표로 세우고 그것을 향한 깃발을 거세게 흔들수록 행복감을 오히려
떨어트리는 경험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 영역이 아닌 집단이나 국가적 수준에서
행복이 추구될 때 더욱 그렇다. 퇴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내걸었던 커다란 비전 중 하나도
국민 행복이었다. 이 물결을 타고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행복을 주입하고, 직장에서는
직원들에게 행복 일화들을 써서 제출하도록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개인이나 국가가 행복을 염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몇 사람이 중지(衆智)를 모아 누군가에게 하달하는 방식으로 행복이 대량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가 이 나라들에 어떤 체계적인 행복 관리 시스템이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다. 그들의 삶에 행복이 꾸준하게 고이는 이유는 행복에 대한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발상 자체를
개인의 삶에서는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에 관한 국가 차원의 역할, 그리고 개인의 몫은 무엇일까?
그 누구의 생각도 정답은 될 수 없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의식주나 치안과 같은 기본적 생활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열악한 사회의 경우 행복해지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불행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계를 지난 사회에서는 불행의 감소가 아닌 행복 향상으로 초점이 바뀌는데,
이때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심리적 환경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보다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구체적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추구하는 다양한 갈래의 행복을 지켜보며 교통정리를 해주는 것이다.
간섭과 참견을 줄이고, 각 개인의 권리와 취향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지지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DB
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떠들며 장난치고 있는데 일찍 퇴근하신 친구 아버님께서 '급습'하셨다.
놀란 우리는 급히 일어나 일렬횡대로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누가 나팔이라도 불면 이건 군대 점호였다.
인사를 받으시고 친구 아버님께서는 우정의 가치에 대해 짤막한 설교를 하시고 나서 이런 제안을 하셨다,
"내가 무엇을 해주면 너희가 오늘 재미있게 놀다 갈 수 있을까?" 어색한 침묵으로 모두 머쓱해졌다.
그러나 아버님이 나가시자마자 우리가 일제히 외쳤다.
"해주실 수 있는 것은 하나―빨리 나가 주시는 것!"
우리의 모습대로 즐거울 수 있도록 물러나 주시는 것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없었다.
개인의 몫도 있다. 자신에게 정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의 경우 이것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가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과도한 타인(他人) 의식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데, 타인의 눈이 판단의 만성적 기준이 되면 나의 즐거움보다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게 된다. 가령 좋은 성적이 아까워서 꿈꾸던 천문학자의 길을 접고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의 특성 중 하나는 세상의 눈보다 자기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바람에 덜 흔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와 기호를 굳건하게 지탱해주는 정신적 '근육'을 각자 키워야 한다.
<< 게시자 추가 :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에서, 저자 최진석 >>
서은국 교수의 [행복산책] 목차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2017.11.20) 긴 휴가, 준비되셨나요?(2017.09.25) "소셜미디어 속 멋진 인생에 흔들리지 마라"(2017.07.24) 축구든 인생이든 즐겨라 (2017.06.05)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혼자 쓰기보다 함께 즐겨야 (2017.04.24) 행복,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몫 (조선일보 2017.03.13) 설날 최고의 덕담, "더 많이 움직이세요"(조선일보 2017.01.25) 마음의 벽, 조금만 낮춘다면(조선일보 2016.10.31) 주고, 받고, 갚는 인생(조선일보 2016.09.19) 금메달의 기쁨? 석 달이면 녹는 아이스크림(조선일보 2016.08.1)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조선일보2016.06.29)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조선일보2016.05.16) '배부른 돼지'에게도 잔치는 필요하다(조선일보 2016. 04.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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