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03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외교가, 뻔한 북한보다 대선 후 韓 새 리더십에 관심
북핵 사드 개성공단 처리에 국제 공조 발맞췄던 한국
유엔 결의 위반 여부와 後果는 5주 뒤 국민 선택에 달려 있어
지난주 워싱턴에 가서 미국 대외정책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그들의 공통 관심사는 한·미 관계였다.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궁금하지 않다면서 새로 등장할 한국의 리더십이 북한과 미국에 어떻게 나올지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무디스(Moody's)와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대규모 투자가들의 한국에 관한 주된 관심도
한국의 경제보다도 한·미 관계의 향방에 쏠려 있었다.
그들의 생각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제까지 드러난 한국의 여론 추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데, 만일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한·미 관계의 악화는 예견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한·미 관계에 닥칠 도전이 부분적이고 일시적일지, 아니면 양국 관계의 기초 자체가 흔들리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이르다고 했다. 의사 표현이 직설적인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국의 새 대통령이 관계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지도
변수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당장 궁금해하는 것은 사드(THAAD)와 개성공단에 대한 차기 한국 행정부의 태도다.
전임 정부 때 이미 시작된 사드 배치를 인정하고 협력할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철수를 요구할 것인가에 따라
한·미 관계의 진로는 판이해질 것이다.
현찰을 북한 당국에 지급하는 기존 방식대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21호에
정면 위배될 뿐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 능력 차단에 (중국을 제외하면) 한목소리를 내온 국제 공조 체제에서
한국이 낙오하리라는 것이 워싱턴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군이 제공한 사드 발사 모습. /뉴시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슬로건은 새롭게 포장될지라도 핵심 기조는 오바마 행정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은 북한의 핵 폐기 의사 없는 핵 동결 약속에 다시는 기만당하지 않고, 북한 위협을 약화시키고 억지하는 정책과
수단을 구비하면서, 북핵을 포함한 모든 북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반도의 자유민주통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좀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정책 패키지를 마련하고자 할 것이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시작으로 9·19 비핵화공동성명(2005년), 2·13/10·3합의(2007년), 2·29합의(2012년)를 거치며
도발-제재-협상-합의-지원-파기의 똑같은 주기가 반복됐다. 그러면서 북한에 다소 개방적(liberal) 태도를 보였던
미국의 민주당은 북한 정권의 행동 지침과 존재 이유는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로 귀결됨을 깨달았다.
한국의 민주당은 아직도 대북 협상과 지원의 마법을 믿고 있다.
대북 제재는 효과가 없고, 김정은 정권의 통치력은 건재하며, 통일은 비싸고 부담스럽다는 것이 문재인 캠프의 입장이다.
그들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통일을 이루겠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바가 없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국가관이 불분명하다고 여겨지면 국민은 질문할 권리가 있다.
대답이 궁할 때마다 색깔논쟁 하지 말자고 피해 갈 일이 아니다. 한국의 군사 방어 태세 구축 노력을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고
전쟁을 유발하는 행위로 호도하고 우리의 무장 해제를 평화 보장의 지름길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라. 문재인 후보 한 사람의 생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원로 그룹과 정치적 동지들의 확고한
신념이 '대통령' 문재인을 압도할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 없다.
사흘 뒤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은 트럼프와 시진핑 두 지도자의 상견례 자리이지 한반도 정책을 결정짓는 담판의 장(場)이
아니다. 중국은 대미 투자, 일자리 창출 방안을 제안해 미국의 '불만'에 일정 부분 화답하고, 대신 남중국해와 북한 같은
껄끄러운 문제는 차차 실무급에서 논의할 장기적 과제로 돌리려 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만 잘 뽑히면
다 쉽게 풀릴 텐데 굳이 미국과 지금 한·미 관계로 다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영국 브리스틀(Bristol) 대학의 인지심리학자 스테판 르완도스키(Stephan Lewandowsky) 교수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사람의 절대다수가 어떤 정보라도 트럼프가 말했다고 하면 믿는 경향이 있으며,
설사 나중에 그 정보가 거짓으로 밝혀져도 투표장에서 트럼프를 찍겠다는 기존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국제 환경에 훨씬 취약하고 분단된 한국이 분열과 반목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후과(後果)는 미국의 경우에 견줄 바가 아니다.
국민은 5주 뒤에 내릴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국가의 운명이 혹시 애초의 기대와 적지 않게 다르더라도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時事論壇 > 핫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시선] 한반도 명운 걸린 미·중 정상회담 (0) | 2017.04.05 |
---|---|
[사설] 내부 政爭이 이스라엘과 한국의 차이를 불렀다 (0) | 2017.04.05 |
[朝鮮칼럼 The Column]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만들어 줄 대통령 (0) | 2017.03.26 |
[기고] '메이크 위드'로 우리와 손잡는 인도네시아 (0) | 2017.03.24 |
[사설] 정부에 손 들고 꼼짝 말라는 점령군 행패 앞으로 어떻겠나 (0) | 2017.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