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291은 사진인들이 꾸려가는 협동조합으로 전시장이자 책방으로 쓰인다. 건물 주소가 29-1번지여서 붙인 이름인데, 이건 꽤 놀랄 만한 우연이기도 하다. 미국 사진계의 거장이자 조지아 오키프의 남편이기도 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1905년 뉴욕 맨해튼가에 열었던 갤러리의 주소도 291이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의 갤러리 291은 뉴욕 최초의 사진 전시장이자, 유럽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미국에 소개하는 진원지였다. 대신 서울의 공간291은 해마다 신인 작가를 발굴해 전시를 지원해 주는데, 지금은 상반기 지원 작가 중 한 명인 김레나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화두는 시간. 신인이라는 수식이 붙은 작가는 이토록 익숙한 불멸의 주제를 어떻게 신선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
횡단보도가 놓인 길 위에 무늬처럼 박힌 인물들의 덧없는 어떤 순간이 있다. 아이들 셋은 뛰어놀기에 여념이 없다. 각자의 방향이 달라 어디론가 흩어져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가운데 여자는 상복을 입고 있다. 조문객이 마지막으로 위로를 전하는 헤어짐의 순간이기도 하다. 담배라도 태우려는지 화면 맨 위 두 남자 또한 어디론가 사라질 태세다. 장례식장 높은 곳에서 훔쳐보듯 무심하게 기록한 6장의 일련의 사진 속에서 이들은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고, 또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홀연히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죽음과 탄생의 반복처럼. 작품 제목은 ‘타임 리프’. 원래는 시간을 거슬러 이동하는 것을 뜻하지만, 작가에는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시간의 운동성 자체를 의미한다. 김레나의 관찰력은 그 시간을 거친 입자의 또렷하지 않은 이미지로 붙들어 둔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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