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찾았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했다. 전망대와 북녘의 거리는 단 2.3㎞. 망원경에 500원 동전을 넣으니 모내기에 한창인 북한 주민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한에서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소다. 문화해설사 김경자씨는 “우리나라 12개 전망대 중에 비무장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전망대 서쪽 10시 방향에 예성강이 보였다. 그 너머가 북한 최대 곡창 지역인 연백평야다. 전망대 소개 동영상에서 벽란도 얘기가 잠깐 스쳤다. 예성강 하구의 해양도시 벽란도는 고려 수도 개경으로 향하는 모든 문물의 들머리였다. 임진강과 만난 한강이 다시 예성강을 받아들여 서해로 빠지는 곳, 중국 송나라 사신에게도 아라비아 상인에게도 벽란도는 고려 땅 1번지였다. 해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요즘 기준으로 인천공항과 부산항을 모아놓은 모양새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이곳에서 활동한 호족의 후예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랄까. 이날 강화전망대에는 실향민 100여 명이 모였다. 한강 건너편 황해도 개풍군 일대가 고향인 사람들이다. 망배단(望拜檀)에 정성껏 음식을 차리고 큰절을 올렸다. 해마다 이맘때 모여 제를 올린다고 했다. 6·25 당시 네 살 때 내려와 경기도 광명시에 살고 있는 권영신씨는 “현재 군수도 있고, 면장도 있다. 고향을 기억하는 어르신이 이제 몇 분 안 계신다. 언제 한번 저 강을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벽란도는 조선시대 이후 활기를 잃었다. 하지만 역사에 새긴 ‘코리아’ 석 자는 선명하다. 6월 호국보훈의 달 첫날, 서울에서 개성을 찍고 벽란도를 거쳐 강화도로 돌아오는 꿈을 꿔 본다. 물론 김정은의 핵 폐기 선언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말이다. 벽란도는 고려 무신 최무선이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개발했던 곳, 중국인 이원에게서 제조법을 배웠다. 왜구를 물리친 최무선의 기개로 한강 남북에 쳐놓은 철조망을 거둘 날을 기다려 본다. 그것이 아무리 백일몽이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염원이기에….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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