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꽃이 고와야 나비가 모인다’고, 상품이 좋아야 손님이 끓는다. 세상의 이치다. 이른 봄에 흰나비를 먼저 보면 엄마가 죽는다 하여 흰나비를 보고서도 ‘아니야, 아니야, 노랑나비 봤어’ 하면서 체머리를 앓듯 흔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슴아슴한 옛날이 되고 말았다. 암튼, 꽃나비(花蝶·화접)는 인연이 깊다.
나비는 절지동물, 나비목(目)의 곤충으로, 몸 빛깔이 퍽 아름답고, 머리에 한 쌍의 더듬이와 두 개의 겹눈이 있으며, 가슴에 두 쌍의 날개가 있고, 긴 대롱 꼴 입으로 꽃물을 빤다. 알→애벌레→번데기→어른벌레가 한살이(일생)로 번데기 시기가 있는 갖춘탈바꿈(완전변태)을 한다. 전 세계에 1만7500여 종, 남북한 합쳐 얼추 280종이 있다 한다.
나비는 자란벌레(성충)와 애벌레(유충)가 먹는 먹잇감이 달라서 어미는 꽃물(nectar)이고, 애벌레는 풀 잎사귀다. 그리하여 어미-자식 간에 삶터(space)와 먹이(food) 다툼을 피해 가니 이 얼마나 슬기롭고 오묘한가.
나비들이 하늘하늘 하늘을 나풀나풀 날개를 나부끼며 나는데, 가녀린 호랑나비나 제비나비도 늘 다니는 제 길이 있으니, 나비길(蝶道·접도)이다. 또, 나비 날갯짓은 종류나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하여 1초에 20여 번으로 초속 0.9m 빠르기란다. 한편, 갓난아기가 머리 위로 두 팔 벌리고 자는 잠을 나비잠이라 하고, 고양이를 부르거나 이를 때 나비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은 오직 가시광선만 보지만, 나비는 가시광선 말고도 자외선을 감지하고, 비늘에서 반사하는 자외선을 보고 동족과 짝꿍을 찾는다. ‘꽃이라도 십일홍이 되면 오던 나비도 아니 온다’고 삭정이 늙다리 수놈들은 비늘이 벗겨져서 자외선 반사가 흐릿하기에 암놈들이 본체만체한다. 그리고 날개 윗면과 아래쪽의 색이 다르니, 먼저 것은 친구와 짝을 알아내는(알리는) 신호로, 나중 것은 보호색으로 쓰인다.
그런데 나비를 잡아보면, 미끈미끈한 비늘(鱗粉·인분·scale)이 손에 그득 묻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그 화려하고 현란한 색과 어룽진 무늬를 뽐내는 나비 비늘에서 물감을 뽑아 보려고 애를 썼다. 성공하였을까? 자, 그럼 또, 붉은 꽃잎을 따서 두 손가락으로 꽉 눌러 으깨 보자. 꽃잎에서는 붉은 색소가 묻어나지만, 놀랍게도 영롱한 나비 비늘은 모두 색을 잃고 무색이 되고 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람?
꽃잎에는 색소가 있어 색깔을 내지만, 나비의 날개 비늘은 색소 없이 색을 내는 구조색(構造色)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나비 날개 비늘은 나노미터(10억 분의 1m) 크기의 정밀한 구조물로, 이런 기하학적 구조 형태를 광구조(光構造)라 한다.
덧붙이면, 꽃 색소가 내는 색깔은 다른 모든 색처럼 색소와 햇빛의 상호작용에 따른 것이지만, 구조색은 결정구조(광구조)에 따라 여러 색을 낸다. 다시 말해서, 색소에 의한 빛깔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같은 색이지만 구조색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나비 비늘을 손으로 문질렀을 때 무색이 되는 것은 나노 광구조가 완전히 어그러져서 본래의 구조색이 사라진 탓이다. 아리따운 꽃잎은 ‘생화학적 색소’로 색을 낸다. 하지만 곱상한 나비 날갯죽지는 ‘물리학적 나노구조’가 색을 짓는다. 진주조개·오팔·공작꼬리깃털·딱정벌레들의 찬란한 물색도 결코 생화학 색소가 아닌 나노구조를 한 구조색인 것.
그리고 암수 나비 한 쌍이 공중에서 살랑거리며 스치듯 맞닿기를 잇달아 하는데, 흔히 그 하늘거림을 밀월 여행으로 짝짓기하는 행위로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실은 수나비가 항문 부위에 있는 돌기를 암놈 더듬이에다 슬쩍슬쩍 문지르면서 사랑의 향수(성페로몬)를 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전희(前戱)를 한 다음, 이윽고 후미진 곳에 사뿐히 내려앉아 너부죽이 날개를 펴고 짝짓기를 한다.
그런데 나비도 서로 튼실한 유전인자를 가진 짝을 고르려 든다. 그런 나비 중에서 애호랑나비나 모시나비 무리는 엉뚱하게도 이기적인 수놈들이 짝짓기를 하면서 암놈의 자궁에 정자 외에도 슬그머니 영양분 덩어리를 끼워 넣는다. 놀랍게도 거기에 성욕억제제(抑制劑)가 들어 있어 암놈이 다시는 더 짝짓기를 하고 싶지 않게끔 한다. 그뿐더러, 그것이 처음에는 물렁하고 반투명하지만, 하루 뒤에는 회갈색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자궁 입구를 틀어막으니 이를 수태낭(受胎囊)이라 부른다. 일종의 정조대(貞操帶)인 셈이다. 고놈들 참 고약하다!
이밖에도 나비들의 생식·생존 전략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밥상에 오른 생선 눈알에 젓가락을 가장 먼저 가져가듯이 동물들이 먹잇감을 찾아내면 눈부터 공격한다. 그래서 나비·나방 무리 날개에 새겨진 ‘눈알 무늬’는 천적(포식자)으로 하여금 그곳을 쪼아 먹게 하는 꾐이다. 가짜 눈이 있는 날개 일부가 다치더라도 살아남을 수가 있을뿐더러 내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는 위협 경고가 되기도 한다. 물고기들도 지느러미에 그런 눈알 무늬를 그려놓는다.
그리고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란, 한 마리의 브라질 나비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이론으로, 초기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사소한 일도 나중에 엄청난 결말을 가져오니 마땅히 대수롭잖고 미미한 것이라도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것.
어쨌거나 한낱 미물로 보이는 나비의 세계 또한 녹록잖고 호락호락하지도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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