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6.1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평릉역 역사의 기둥에 쓰다 관직 하나 완전히 내 몸 위해 마련했건만 관대 띠고 과객 맞자니 백발에 부끄럽구나. 조물주의 화로 앞에 귀찮게 축원하노니 다른 생에는 바닷가의 갈매기로 만들어주오. | 題平陵舘柱 一官都是爲身謀(일관도시위신모) 束帶逢迎愧白頭(속대봉영괴백두) 造化爐前煩祝禱(조화노전번축도) 他生願作海中鷗(타생원작해중구) |
이름을 알 수 없는 평릉역 역관(驛官)이 지은 시다.
평릉역은 강원도 삼척의 바닷가에 있던 오래된 역으로 현재는 동해시
중심부가 된 곳이다. 역의 기둥에 이 시가 쓰여 있었는데 역관이
소회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별다른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어렵사리 관직 자리 하나 꿰찼다.
그런데 하급 관료가 되고 나니 관대에 관모를 차려입고
역을 찾아오는 높고 낮은 벼슬아치를 공손하게 맞아야 한다.
비위에 맞고 안 맞고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 관직에 나갔는데 오히려 허연 머리를 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통쾌하게 내던지고 자유인이 될 수도 없다.
바닷가 하늘을 나는 갈매기가 오히려 부럽다.
사람의 운명을 정하는 조물주의 용광로 앞에 나가서 조물주를 귀찮게 하더라도
축원의 말 한마디 올려야겠다.
다음 생에는 차라리 저 바닷가의 갈매기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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