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최상연의 시시각각] 봄날은 금방 간다

바람아님 2017. 7. 22. 09:51
중앙일보 2017.07.21. 02:17

제왕적 대통령 끌어내린 문 정부
비판한 권력 풍토 닮아 가려는가
최상연 논설위원
대한민국 총리처럼 어려운 자리도 없다.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목소리를 내면 미운털이 박히지만 대통령이 어려울 땐 목청을 돋워 방패가 돼야 한다. 총리의 유일한 권한이라야 배짱 안 맞으면 사표 던지는 거란 농담이 있는데, 그마저도 배포가 커야 가능하다. 대통령 허락 없는 사표는 항명이나 반란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물론 책임총리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기 나름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김종필·이해찬 총리는 목소리를 내는 쪽이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 정치 현실은 책임총리와 거리가 멀다.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려다 5개월 만에 쫓겨난 총리도 있다. 분권 약속에 한두 번 속은 게 아니어서 이낙연 총리가 “의전 총리, 방탄 총리 안 하겠다”고 열을 낼 때 다소 생뚱맞단 생각이 들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총리가 조각 과정에 장관을 제청했다거나 대통령과 협의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총리를 보좌하는 실장급 인선까지 청와대 하명 인사란 소리는 나왔다. ‘책임총리라 쓰고 리모컨 총리로 읽는다’는 비아냥도 있다.


책임장관이란 것도 그렇다. 엊그제 정부 발표대로면 550개나 넘는 정부 위원회는 앞으로 한참 더 늘어나고 위상이 커진단다. 역할과 권한이 정부 부처와 충돌할 게 뻔하다. 가뜩이나 경제 부처면 커진 청와대의 정책실장·일자리수석·경제수석·사회수석·경제보좌관이란 ‘다섯 시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마당이다. 대세론에 편승한 폴리페서 참여가 많아 ‘교수 공화국’으로 불리던데, 이젠 완장 찬 시민단체 인사들이 가세하는 ‘위원회 공화국’으로 덧칠되는 모양이다.


이런 식이라면 신고리 5, 6호기 원전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한 일사천리 국무회의가 이상할 것도 없다. 경위야 어쨌든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 장관은 발언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깨알 지시를 한 자라도 놓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장관들이 받아쓴 게 책임총리를 공약한 박근혜 정부의 국무회의였다. 사사건건 반대로 가는 문재인 정부지만 국무회의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대통령은 분명 ‘책임총리’ ‘책임장관’을 말했는데 임명된 총리·장관은 곧이듣질 않는다.


탈원전만도 아니다. 4대 강 보(湺) 개방이든 비정규직 제로화든 아니면 또 뭐든, 중차대한 나랏일이 자고 나면 난데없이 뒤집히는 데 이견도 브레이크도 없다. 대의제라면서 국회선 논의가 없고 관련 위원회는 청와대 위세 앞에 사실상 거수기다. 법대로면 청와대는 의사 결정 기관이 아니다. 대통령은 비서진 이야기를 들은 뒤 그걸 참고로 국무회의에서 장관들과 함께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1000명이 넘는 청와대 인력이 정부 부처를 일일이 장악하고 내각은 눈치나 보는 국정운영 시스템은 세상 바뀐 줄을 모른다. 질긴 적폐다.


무소불위 권부(權府)로 청와대 조직을 키운 건 박정희 대통령이다. 정책적 필요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 권력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제왕적 비서실의 실패가 부른 제왕적 대통령의 실패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다. 뭘 하느냐만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까지 취소한 정신이라면 청와대 작동 방식에선 박정희 모델을 확 걷어내야 한다. 정치는 국회와, 정책은 장관들과 논의하면 된다. 청와대는 소규모 비서실이면 충분하다. 그래야 소통과 자율이 살아나고 권력 풍토가 바뀐다. 그게 촛불 민심이다.


‘오만한 권력자는 시간 빨리 가는 걸 모른다’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엊그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충고했다. 어느 정권이든 다를 게 없다. 봄날은 금방 간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