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일사일언] 겨울 자작나무 숲

바람아님 2018. 1. 18. 09:28

  조선일보 2018.01.17. 03:05

박원순 에버랜드 가드너 '나는 가드너입니다' 저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챈티클리어(Chanticleer·수탉)라는 이름의 정원이 있다. 윌리엄 새커리의 소설 '뉴컴스'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 수탉을 모티브로 한 공간이다. 정원사 사이에서 위트 있고 예술적 수준이 높은 정원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곳 정원사들에게 가장 바쁘고 중요한 계절은 겨울이다. 바깥 정원에 심었던 열대 식물을 실내로 옮기고, 낙엽을 치우고 크고 작은 나무의 가지를 정리한다. 이른 봄에 꽃 피는 구근을 땅에 심고 겨울이 끝나면 바깥에 옮겨 심을 어린 식물을 온실에서 키우느라 분주하다.


이들에게 겨울은 각자가 새롭게 선보일 비장의 아이템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겨우내 정원에 필요한 가구나 문, 다리, 펜스 등 나무와 철제를 이용한 각종 소품을 직접 만든다. 고사리 새순 모양의 울타리라든지 나뭇잎 모양을 본뜬 음수대같이 정원의 보조 소품들에까지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각자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기지를 발휘해 수공예로 만든 이 소품들은 정원을 특별하고 개인적인 느낌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든다.


이들이 영감을 받는 대상은 주로 자연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다양한 요소가 자연에 있다. 자연에서 얻는 경험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데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정원사들은 틈나는 대로 자연을 찾아 여행을 즐긴다.

겨울의 숲은 수많은 색깔과 치장이 사라지고 순수한 민낯과 골격만이 남는다. 나는 겨울이면 자작나무 숲을 즐겨 찾는다. 곧게 뻗은 흰색 나무가 설원 위에 빽빽하게 펼쳐진 광경은 새로운 시작과 잘 어울린다. 온통 새하얀 자작나무 숲 속에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진다. 새하얀 겨울 숲을 걸으며 다시 처음을 생각한다. 봄이 오면 또 어떻게 정원을 가꿀지 빈 도화지에 그릴 그림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