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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6] 불교 사상 깃든 '자유'와 '평등'

바람아님 2018. 1. 19. 08:49

(조선일보 2018.01.19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근대 시민사회의 중핵적 가치는 기본권이다.

기본권은 크게 보아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서구의 자유와 평등 개념은 그리스 철학에서 기원을 찾기도 하지만, 근대 이후 확산은 역시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표명하는 것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起草)한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자에 의해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 등의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하고 있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를 선험적 진리로 간주함으로써 자유 보장을 위한 국가권력 제한,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하는 법치주의 등의 기본권 이념과 제도가 진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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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은 근대화 시기 일본이 liberty와 equality를 번역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재미있는 것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은 본시 불교 용어라는 것이다.

자유(自由)는 법구경(法句經)에 나와 있는 석가의 근본 사상인 '삶의 본질은 스스로에서 유래하고

스스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平等)은 불교 사상 그 자체로서 '만물(중생)은 똑같이 진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서구의 관념을 불교 용어를 차용해 번역한 것이니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들의 자유, 평등에 대한 관념은 어딘지 불교적인 구석이 있다.

서구의 자유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일본의 자유는 내면이 속박되지 않음을,

서구의 평등이 차별의 제거를 의미한다면 일본의 평등은 서로가 자제(自制)하여 조화를 추구하는 심성이

바탕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한국인의 심성 속 자유와 평등도 어떠한 고유의 정신적 유산이 반영되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