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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여자 누드' 많은 이유

바람아님 2018. 1. 16. 07:26

(조선일보 2018.01.16 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저자)


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저자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저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미술사도 그렇다.

처음 미술관에 다닐 땐 잘 몰랐다.

런던, 파리, 피렌체 등 주요 미술관 소장품의 열에 아홉이 남성 화가 작품인 점,

여성 누드화가 셀 수 없이 많은 점이 그냥 자연스러운 건 줄 알았다.

하얀 피부, 풍만한 몸매, 유혹하는 자태를 보며 '저런 게 아름다움이구나' 감탄했다.

비루한 내 몸뚱이를 부끄러이 여겼을 뿐 '보는 남자―전시되는 여자' 구도를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 눈에 어떤 '안경'이 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지를 우리는 배운다는 의식 없이 배운다.

인류 역사 대대로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하고, 평가하고, 수집할 힘과 돈을 가진 건 권력층 남성이었다.

그들 구미에 맞는 작품은 성당이나 박물관 등에 전시돼 권위가 더해졌고, 수백 년간 아름다움의 정론이 됐다.



처음으로 이 '안경'을 벗겨준 예술가는 미국 화가 실비아 슬레다.

그녀는 사람들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누드화를 골라 여성 모델이 있던 자리에 남성 모델을 배치했다.

명화 속 여성들이 보여주는 익숙한 포즈를 남성 모델이 취한다.

체모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편집된 몸이 아닌 현실 그대로의 몸이다.

유혹하던 여성의 자리에 거뭇한 남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실비아 슬레이 작품은 낯설다.

역으로 질문이 성립한다. 그동안 무엇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슬레이의 그림이 불편할까.


실비아 슬레이를 만나고 그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누구의 시선으로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을 판단하는가?'란 질문을 품게 됐다.

책에 나온 예술사적 정론보다 내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는지에 더 집중한다.

당연한 믿음들로부터 한발 물러나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곰곰 따진다.

오래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관점을 갖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함을 배운다.

맑은 눈으로 나를 본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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