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17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바둑이' 개발자 이주영 교수… 4개월 만에 최고수 프로들과 접전
정부·카이스트·대표팀 총력 지원 "신물질 연구 위한 승부처로 인식"
발전 속도가 눈부시게 빠른 한국산 인공지능(AI) 대국 프로그램이 등장해 바둑계가 주목하고 있다.
태어난 지 불과 4개월 남짓인데 벌써 최고수급 프로들과 팽팽히 겨루는 실력이다.
'바둑이(BADUKi)'로 명명된 이 AI의 '생부(生父)'는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이주영(59) 교수다.
서울대 물리학과와 미국 브라운대 통계물리학 박사 출신인 그는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바둑 AI에 도전하게 됐을까.
"알파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충격받았어요. 신약 개발을 통한 인류 기여가 궁극 목표란 내용인데,
그건 제 전공 영역이거든요. 거꾸로 내가 인공지능에 도전해 보자는 오기가 생겼죠."
바둑 인공지능 ‘바둑이’ 개발자인 이주영(오른쪽) 교수와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성재 9단이 전용 GPU
(그래픽 처리 장치)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홍렬 기자
이 교수는 알파고 관련 논문을 50번 정독하고 UEC(일본 주최 세계 AI 대회)를 다녀온 뒤 작년 12월 초
본격 개발에 착수했다. 때마침 인공지능이 한국연구재단(NRF) 전략 과제에 포함된 것도 행운이었다.
가치망과 정책망,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망 등을 갖춘 첫 버전이 12월 말 나왔고, 올 2월 중순엔 AI 자체 대국 체제로 들어갔다.
3월부터는 알파고 제로(기보 입력 없이 스스로 깨치고 발전하는 알고리즘)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도약이 시작됐다.
중견 프로 이성재(31) 9단도 연구팀 자문역으로 합류했다.
바둑 기술 전반 및 바둑계와의 소통을 책임진 그는
"1월 초 내게 정선(定先) 정도 실력에서 한 달 만에 호선이 되더니 3월부터는 나보다 세졌다.
성장 속도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세계 챔프 출신 원성진 9단은 3월 말 바둑이와 1승 1패를 거둔 뒤 "형세 판단 능력에 탄복했다"고 했다.
지난 13일엔 국가대표 기사들이 고등과학원을 방문했다.
이날 바둑이는 이동훈에겐 끝내기서 역전패했고, 신민준에겐 사활 착각으로 졌다.
두 젊은 고수는 "아직 덜 다듬어진 느낌이지만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고 했다.
성장 환경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10대로 시작한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현재 28대로 늘었다.
자매 기관인 카이스트가 "앞으로 1000대까지 늘려주고 싶다"며 전폭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하루 대국 수가 10만판으로 늘어 더 큰 도약이 가능해진다.
바둑이는 해외로 나가 세계적 AI들과 겨룰 계획도 세웠다.
4월 푸저우(福州), 8월 난닝(南寧) 대회를 거쳐 12월 일본UEC 대회에선 4강 진입을 노린다.
중국 줴이(絶藝), 일본 딥젠고, 한국 돌바람 등과 격차를 얼마큼 좁히느냐가 1차 관심사다.
이 교수는 "한 달내 최적화(optimization)를 접목하면 더 강해질 것"이라며 비장의 카드를 준비 중임을 내비쳤다.
"학문적 외도(外道)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백질과 신물질 연구 과제에 다가가는 방편으로 바둑 AI에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에요."
바둑 실력 아마추어 2단 정도에 불과한 '바둑이 아버지'는 매일 10시간씩 연구를 거듭하며 최강 AI를 향한 꿈을 불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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