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기자의 시각] 외교부의 '꼼수 擇日'

바람아님 2018. 5. 1. 08:50
조선일보 2018.04.30. 03:11
김진명 정치부 기자

남북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외교부가 출입기자단에 갑작스러운 통보를 했다. 두 달 전쯤 내정된 공관장 23명(대사 19명, 총영사 4명) 인사(人事) 발령을 정상회담 당일인 27일 내겠다는 것이었다. 공관장은 상대국의 아그레망(부임 동의)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사 내정 때 바로 발표하지 않고 필요한 절차가 끝나야 공개한다. 외교부는 통상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절차가 끝난 공관장들을 모아 한꺼번에 공표해왔다. 인사 발령 날짜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 정상회담 같은 초대형 이슈가 있는 날에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의 모든 관심은 그곳에 집중된다. 공관장 인사는 다룰 여력이 없다. 억지로 보도를 하더라도 아무 주목을 받지 못한다. 기자들이 이런 점을 지적하자 외교부는 마지 못해 "발표를 29일로 늦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도 정상회담 후속 보도로 공관장 인사는 상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이 충분히 예상되는 가운데도 외교부는 왜 굳이 이런 택일(擇日)을 했을까. 보도 대상이 된 대사 명단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코드, 논공행상 인사' 지적이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된 대상은 주(駐)베트남 대사에 발탁된 김도현 삼성전자 글로벌협력실 상무다. 2013년까지 외교관이었던 김 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표적인 '자주파'로 꼽혔다. 2003년 12월 외교부 북미국 서기관이었던 그는 직원 회식에서 나온 사담(私談)을 정리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투서를 했다.

"모 과장 등이 '청와대 외교정책이 반미(反美)적'이라는 비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는 이를 '공직 기강 해이' 사건으로 발전시켰고 '동맹파' 외교관들은 줄줄이 인사 조치를 당했다. 윤영관 당시 외교장관까지 경질됐다. 당시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이번 정부 들어 '미국통' 외교관들 상당수가 적폐로 찍혀 밀려난 가운데 이런 사건의 주인공을 주요국 대사로 발탁하면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베트남 대사는 주로 차관·차관보급이 가는 자리인데 김 대사의 외무고시 동기들은 현재 초임 국장급이다. 삼성이 베트남에 대규모 휴대전화 생산 기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 임원을 베트남 대사로 파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 상충(相衝) 문제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이런 논란이 남북 정상회담 뉴스에 묻히길 원했을 것이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 적폐 청산'을 맡았던 외부 인사를 일본 오사카총영사로 발령하는 인사도 굳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일(4월 6일)에 냈었다. 시선 분산을 노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국민을 대하겠다는 건지 외교부에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