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혀를 내두르게 하는 모사드

바람아님 2018. 5. 4. 15:05

(조선이롭 2018.05.03 안용현 논설위원)


2006년 4월 이란 나탄즈의 지하 핵 시설은 긴장에 휩싸였다.

과학자들은 핵폭탄 원료인 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신형 원심분리기의 첫 가동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기술 책임자가 작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원심분리기는 날아가 버렸다.

누군가 핵 시설에 불량 부품을 끼워 넣어 발생한 폭발 사고로 추정됐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증거는 없었다.


▶모사드는 1980년대 말 파키스탄 핵 개발 주역과 접촉한 이란의 핵 개발 야심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2005년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공언하는 이란 대통령이 등장하자 사력을 다해 이란 핵 저지에 나섰다.

2010~2012년 암살한 이란 핵 과학자만 4명이다.

대부분은 수도 테헤란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차에 접근한 오토바이 운전사가 붙인 '자석 폭탄'에 목숨을 잃었다.

이란 핵 시설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사고가 잇달았다.

결국 이란은 2015년 미국 등과 핵 합의를 할 때까지 핵무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이란 정보기관 '모이스'도 반격에 나섰다. 2012년 1월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이 암살당한 것이 계기였다.

한 달 뒤 태국 방콕에서 주택 지붕이 날아가는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사망자 3명과 피를 흘리며 뛰쳐나온 1명은 엉뚱하게도 이란 국적이었다.

모이스가 모사드처럼 '자석 폭탄'으로 이스라엘 외교관을 노리다 은신처에서 실수로 폭탄이 터져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엊그제 TV 생방송에 나와 '이란이 핵 합의를 위반한 증거'라며 이란에서 입수한

CD 183장과 문서 5만5000여 장을 공개했다.

문서 무게만 500㎏이다. 지난 1월 모사드 요원들이 테헤란의 한 비밀 창고를 털었다고 한다.

2년 가까이 준비한 비밀공작이었다.

적국 수도에 침투해 0.5t이나 되는 문서를 어떻게 빼냈는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국정원은 우파 정권일 때는 댓글을 달고 좌파 정권일 때는 북한과 교섭을 한다.

국정원은 지난 3월 북한 특별열차가 중국에 들어간 뒤에도 김정은 방중(訪中)을 확인하지 못했다.

본연의 임무는 못 하고 대북 교섭만 하니 한국엔 진정한 정보기관이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서훈 국정원장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장 현장에서 감격해 눈물을 닦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아마도 세계 정보기관 역사에 남을 희귀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