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2018.08.17. 17:26
그림을 보면 시가 떠오르고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다
올해 폭염이 지속되다 보니 예전과 다른 피서 현상이 나타난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은 사람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바깥 기온이 워낙 높다 보니 해수욕장에 가려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실내 물놀이 시설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기온이 피서 방식을 바꾸는 것처럼 사람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에어컨이 있는 실내를 선호하다 보니 자연히 도서관과 박물관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찾을 때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기기보다는 눈길을 끄는 한 작품 앞에서 가까이 다가갔다 뒤로 물러났다 하며 응시하는 방법을 취하면 좋겠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 훗날 다녀온 기억은 있지만 뭘 봤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반면 응시하는 방법을 취하면 훗날 한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올 경우 금방 연상이 일어난다. 후자의 방법과 관련해 소동파가 남긴 말을 공유하면 좋다. “그림을 보면 시가 떠오르고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다(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 소동파는 왕유의 그림 ‘남전연우도(藍田煙雨圖)’를 보고 쉽게 눈길을 떼지 못하다가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본 것이다. 왕유의 그림은 그림으로 머물지 않고 소동파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그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떠올리게 하고 그 시를 음미하게 됐다. 그러다 다시 시에서 그림으로 돌아오는 순환 과정을 겪은 것이다. 이러한 순환 과정에 들어서면 감상자는 자신이 지금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그림과 시의 예술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처음에 이 시를 읽으면 독자는 스님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움직이고 함께 물을 병에 담는다. 그러다가 스님의 기대가 차갑게 깨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욕심’과 ‘어리석음’이 생각난다. 이어서 독자는 더 이상 스님에게 주목하지 않고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옮기게 된다. 가까운 나날을 굽어보고 이어 좀 더 먼 지난날과 지금을 비교하고 미래에 만날 자기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이규보 시의 스님은 어느 절에 있는 어리석은 스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이규보의 시는 시에 그치지 않고 그림이 됐다가 사진이 되고 다시 한 편의 동영상이 된다. 이규보의 시를 처음 봤을 때 결코 나를 만나리라 예상하지 않았지만 시를 읽다 보니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동파가 읊었던 ‘화중유시 시중유화’ 구절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더위를 피해 도서관과 박물관을 찾았다가 인생 사진처럼 이렇게 인생의 시를 만난다면 여름이 준 선물치고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난 인생 작품은 나를 풍요롭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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