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범죄' 극성부린 지난 8월
서울 市內 화장실 현장 취재하니 변기·門에 구멍 막은 흔적 수두룩…
지난달 서울 삼성동에선 한 여성이 사무실 건물 화장실 변기 옆에 이상하게 뭉쳐진 두루마리 휴지를 보고 혹시나 해서 만졌다가 휴지 속에 숨겨진 카메라를 발견했다. 경기도 여주의 주민센터 여자 화장실에선 종이컵 안에서 초소형 카메라가 발견됐다.
광주에선 30대 조리사가 여직원 탈의실에 스마트폰 보조배터리처럼 생긴 몰카를 놔두고 1년 동안 불법 촬영을 하다가 걸렸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모텔 세 곳에 모두 17개의 몰카를 설치한 40대 남자를 붙잡으면서 그가 최근 4년간 찍은 2만여 개의 몰카 영상 파일도 압수했다.
불법 촬영 장치는 화재경보기, 생수통, 담뱃갑, 차 열쇠(키), 벽시계, 거울에서도 발견됐다. 바늘 구멍만 한 크기라도, 렌즈를 대고 카메라가 되어 실시간 중계까지 가능해졌다. 매일 17건이 넘는 수치가 불법 촬영 범죄로 신고된다는데, 못 찾고 숨어있는 카메라는 주변에 얼마나 더 많을까?
몰카 범죄가 극성이던 올해 8월 후배 여기자는 며칠간 서울 시내 화장실을 다녀보았다. 지하철이나 식당들이 모인 상가 등의 여성 화장실엔 벽이나 문에 알 수 없는 구멍들이 휴지로 막혀 있었다. 몰카를 의심한 여성들이 나사만 한 구멍이라도 막아놓은 흔적들이었다. 실제로 화장실 변기나 문, 화재경보기 등에서 교묘하게 설치된 몰카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여성들이 몰카를 부수기 위해 '몰카 찌르개'라고 부르는 송곳이나 드라이버를 갖고 다닌다며 인증 사진들이 올라온다.
혼잡한 출근 시간, 서울의 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이 자신보다 두 칸 아래에서 한쪽 다리를 올리고 다리 위에 스마트폰을 들었던 한 남자를 따라가 잡았다.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그 남자는, 경찰이 압수한 그의 스마트폰에서 그가 몰래 찍었던 여성들의 치마 속 모습들을 보여주자 그제야 한 번만 봐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몰카 범죄 현장 모습이다.
몰카 범죄를 수사했던 한 경찰관은 신고되는 불법 촬영 범죄들의 대다수는 스마트폰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유튜브엔 일부 초등학생들이 엄마의 사적인 모습까지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해 올리는 '엄마 몰카'나 청소년들의 '선생님 몰카'까지 등장했다.
몰카를 왜 볼까? 몰카 영상을 본 사람들은 "감춰지고 가려진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궁금한 것을 훔쳐보기 위한 호기심" "꾸미지 않은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 포르노 대신 찾아본다"고 했다. 불법만 아니면 계속 보고 싶다고도 했다. 결국 몰카를 훔쳐 보는 짜릿함이나 호기심 충족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에 피해자들에게 몰카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이 된다. 외국에 서버를 둔 성인 사이트들은 무작위로 찍어 올린 몰카 영상들이 판매된다. 피해자들은 수백만원을 주고 디지털 장의(葬儀)업체에 의뢰해서 영상을 지우려고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디지털 이미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란 쉽지 않다.
최근엔 소셜미디어로 옛 연인의 사적인 사진이나 영상들을 이별 통보에 대한 복수로 올리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한때의 즐거움으로 합의해서 촬영했다지만 이렇게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신체 폭력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을 상대에게 가한다.
몰카 범죄에 분노한 일부 여성들은 복수의 의미로 남자 화장실 몰카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발전된 영상 기술은 계속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직장 동료가 주인공에게 찾아와 회사 화장실에서 몰카를 당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나 사실 정신과 다니고 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일부러 더 크게 웃고 다니지만 정말 미칠 것 같아. 모르는 사람이랑 눈만 마주쳐도 저 사람 내 사진을 본 건가 싶고, 누가 웃으면 나를 비웃는 거 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아."
몰카는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렌즈 앞에서 나신(裸身)을 클로즈업당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다 벗고 광화문네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덜 부끄러울 것이다. 당신의 가족이나 당신의 그런 모습이 찍혀서 온 세상에 둥둥 떠다닌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래도 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