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08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요즘 쇼핑몰을 종종 걷는다. 미세 먼지 때문이다.
이상한 건 쇼핑몰 산책은 30분만 해도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걷는 걸음으로 보면 공원을 걷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게 적게 걸었는데도 그렇다(만보계 앱을 켜놓기
때문에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읽은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우리가 걷고 싶은 거리가 어떤 거리인가에 대한 답이 있다.
걷고 싶은 환경이 되려면 걸을 때 풍경이 바뀌어야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쇼핑몰에 대형 서점이나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는 '변화하는 자연'이 없기 때문이다.
계절을 바꿀 수 없으니 극장의 상영작이나, 서점의 책이라도 바꾸는 것이다.
쇼핑몰이 인테리어를 자주 리모델링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 사라진 후, 그 옆에 고층 빌딩이 들어섰을 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눈 내리는 날 지글지글 굽는 고등어 냄새가, 찌는 한여름 가게 문을 열어놓고 마시는 막걸리의 풍취가
건물 안에서 드러나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골목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노란 은행나무, 코스모스 등
우연한 계절 풍경들이 쇼핑몰에는 없는 것이다.
쇼핑몰에서 달라지는 건 그나마 가게들이다. 하지만 요즘 상가에는 가게마다 붙어 있는 '임대 문의'가 수두룩하다.
바뀌는 가게를 보면 호기심이 생기는 게 아니라 "이 집도 망해서 나갔구나"란 쓸쓸함이 밀려온다.
뉴욕에 가면 서울에서보다 자주 걷게 된다. 이유가 있다는 걸 건축학적으로 알게 됐다.
맨해튼의 경우 10㎞ 내에 10개의 공원이 배치되어 있어서 뉴욕 시민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7분만 걸으면
어느 공원이든 걸어서 갈 수 있다.
서울의 경우는 공원 간 평균 거리가 4.02㎞로 공원 간 보행자 평균 이동 시간이 1시간 1분이다.
행복은 세기보다 빈도(頻度)라 했던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걷기 좋은 곳, 작은 공원이라도 더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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