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2019.01.26 00:43
일본인, 역사 제대로 몰라 논쟁하려고만 해
마쓰타니 목사는 그러면서 한·일 양국 정치인들이 시도하는 ‘프레임 작업’의 위험성을 힘주어 지적했다.
“일본은 100년 전 발생한 3·1운동에 기독교인이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활용해 사회주의자와 함께 기독교 신자를 천황제의 최대 위협 요소로 프레임화한 뒤 집요하게 탄압했다. 1919년 4월 일본군이 제암리 교회의 담에 불을 질러 기독교인을 학살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아베 정권은 현재도 자신의 정치·경제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혐한(嫌韓) 감정을 프레임화하고 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합리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친일파였느냐 아니었느냐’는 프레임만으로 재단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런 프레임에 희생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예를 들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항일 활동을 했지만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친일파로 낙인 찍고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천황제 반대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될 수 있다.”
도쿄=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지난 18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마쓰타니 요시아키(好明松谷·75) 목사는 자신을 큰 교회의 현역 목사도 아니고 은퇴한 목사이자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아 한 명의 민간인으로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 단지 한 명의 민간인이 아니다. 15년 동안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를 반성하기 위해 한국·중국·대만과 동남아시아 출신의 아시아 학생 160여 명을 일본에 초청해 무료로 가르치고 후원했다. 1985~92년 7년 동안은 고향인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FIFC)에서 후원 사업을 이어갔다.
그는 일본 지식인들의 헌금과 후원금으로 운영해 온 센터를 여러 이유로 7년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FIFC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아 건물 전체가 수 미터나 푹 꺼졌고, 이 같은 유례 없는 참사 속에서 그는 보관 중이던 자료 대부분을 잃었다고 했다.
최근 한·일 관계를 두고 일각에선 1965년 한·일 기본협정 체결 이후 최악의 상태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내에는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악화됐다는 진단도 적잖다. 그에게 ‘현재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질문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마쓰타니 목사는 뜬금없이 “일본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 비슷하다”는 답변으로 말문을 열었다.
7년간 아시아 학생 160여 명 후원
그는 일본 지식인들의 헌금과 후원금으로 운영해 온 센터를 여러 이유로 7년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FIFC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아 건물 전체가 수 미터나 푹 꺼졌고, 이 같은 유례 없는 참사 속에서 그는 보관 중이던 자료 대부분을 잃었다고 했다.
최근 한·일 관계를 두고 일각에선 1965년 한·일 기본협정 체결 이후 최악의 상태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내에는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악화됐다는 진단도 적잖다. 그에게 ‘현재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질문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마쓰타니 목사는 뜬금없이 “일본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 비슷하다”는 답변으로 말문을 열었다.
7년간 아시아 학생 160여 명 후원
무슨 뜻인가.
“1990년대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동료들에게 일본과 로마 가톨릭은 500년은 지나야 겨우 조금 변할 수 있을 것이란 농담을 하곤 했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 제도와 일본의 천황 제도는 기본적으로 변하기 힘들기 때문에 500년은 걸릴 거란 뜻이다.”
왜 변화가 힘든가.
“최근 잇따라 불거진 위안부와 강제 징용 노동자 논란, 레이더 조사(照射) 공방 등은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의 역사 인식이 잘못돼 있다는 점이다.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따질 순 있겠지만 역사 인식, 특히 한국과 재일 한국동포에 대한 편견을 고치지 않고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역사 인식 변화가 왜 그리 힘들다고 보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신도(神道)라는 이름으로 종교화까지 된 천황제다.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공영권을 만들어 한국과 중국을 리드해야 한다는 게 하나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다른 하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천황을 신이자 일본의 중심으로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이다. 이른바 ‘천황민족주의’다.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은 우월한 민족으로 계속 존재해야 하고, 천황을 받드는 게 일본인의 사명이라고 교육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보였던 모습과 일본을 비교했다. “독일 역사에는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다. 나치즘이 기독교를 활용하려고 시도했지만 상당수는 항거했다. 독일의 국가 리더들은 전후 이런 종교적 기반을 바탕으로 나치즘이 재생산되는 걸 막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폭압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했다. 또 어릴 적부터 나치의 만행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본은 정반대다. 왜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 시절 얼마나 다른 나라에 폭압적이었는지 거의 교육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통치에 대해 우월감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아베 정권 들어 심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아베 정권이 특히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역사를 배우지 못한 많은 일본인이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위안부나 징용 노동자 얘기가 나오면 일단 그게 무슨 얘기인지 모르면서 ‘전쟁 때는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생각한다. 한국도 베트남전 당시 그러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면서 일본과 한국 중에 누가 더 나쁜지를 놓고 논쟁하려 든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또다시 트집을 잡는다고 비난한다. 역사를 정확히 알지 못해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직접 교육하게 된 건가.
“이런 잘못된 역사 인식을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하고, 그것이 오히려 일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목사지만 후쿠시마 주변 대학교나 사회교육기관에 틈나는 대로 강사로 나가 일본이 한국과 중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역사를 가능한 한 자세히 가르쳤다.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는 일본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의 학생들을 돕고 싶어 설립했다. 작은 바람일 순 있지만 양심이 살아 있는 지식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면 그래도 500년보다는 조금 덜 걸리지 않을까. 3보 전진에 2보 후퇴할 순 있겠지만 결국 한 걸음은 나아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장기적으론 낙관하고 있다.”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우익들, 특히 헌법 수정주의자에 대해 일본 내 많은 지식인이 반대하고 있다. 일본 내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갈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본인, 역사 제대로 몰라 논쟁하려고만 해
아베 총리는 우파 지지를 바탕으로 개헌을 통한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추진 중이다.
“그 부분이 조금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일본은 메이지(明治)시대부터 국가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 산업화도 국가 주도로 했다. 모든 것이 국가 우선주의고, 그 밑에는 민족주의가 깔려 있으며 그 중심에는 천황제가 있다. 우파의 사고는 즉 천황제 사고다. 일본식 포퓰리즘의 근저에 천황제가 있다. 올해 5월 아키히토 천황의 장남인 나루히토 황세자가 일본의 새 천황으로 즉위한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같은 지식인 그룹까지 지지한다. 천황제가 어떻게 생겼고 그게 왜 문제인지를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서도 혐한 정서가 퍼질 정도로 비판적인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어느 쪽이 옳다고 논평하고 싶지 않다. 역사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의 입장 차는 언제든지 있었다. 지식인으로서 일본의 대응이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베 정권이 워낙 강하게 우파 성향을 보이고 있고 개헌 포퓰리즘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그 주변에 있는 정치인들도 한국 얘기만 나오면 충성 경쟁을 하듯 그런 정서를 펌프질하는 측면이 있다.”
올해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을 맞았다. 선언을 평가한다면.
“선언은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베 정권은 (선언 계승이) 불가능하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지나치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 다만 일부 정치인이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뿐이다. 다음 정권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역사 인식이 달라지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추진도 가능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양국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3보 전진에 3보 후퇴만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흘러가는 정권은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본 내에서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해도 역사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비판을 일본은 감당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만 얘기하면 일본인들은 당연히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었네’라고 생각해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마쓰타니 목사는 그러면서 한·일 양국 정치인들이 시도하는 ‘프레임 작업’의 위험성을 힘주어 지적했다.
“일본은 100년 전 발생한 3·1운동에 기독교인이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활용해 사회주의자와 함께 기독교 신자를 천황제의 최대 위협 요소로 프레임화한 뒤 집요하게 탄압했다. 1919년 4월 일본군이 제암리 교회의 담에 불을 질러 기독교인을 학살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아베 정권은 현재도 자신의 정치·경제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혐한(嫌韓) 감정을 프레임화하고 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합리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친일파였느냐 아니었느냐’는 프레임만으로 재단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런 프레임에 희생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예를 들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항일 활동을 했지만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친일파로 낙인 찍고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천황제 반대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지금은 최악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아베 정권 때문에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본도, 한국도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사회도 성숙한 나라다. 지금은 일본 우익이 예전보다 강하게 활동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같지만 일본 전체로 봤을 때는 여전히 일부일 뿐이다. 일본에서 한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점 환영받지 못하는 자정 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일 민간 교류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주는 진정한 관계다. 이런 추세는 절대 후퇴할 수 없고 오히려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예전엔 서로를 잘 몰라 온갖 정치적 선동에 쉽게 휘둘리곤 했지만 이제 그런 시도는 의미가 없어졌다.”
마쓰타니 요시아키(好明松谷) 목사
● 1944년 후쿠시마(福島) 출생
● 1967년 히토쓰바시대 사회학부 졸업
● 1977~85년 코메니우스학원대학 예비학교 교장
● 1985~92년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FIFC) 총주사
● 1992~96년 런던 일본인 전도 모임 활동
● 1996~2002년 후쿠오카·도쿄 등에서 목회
● 2002~2013년 세이가쿠인대 종합연구소 교수
● 2013~2016년 오사카에서 목회
● 2016년 3월 은퇴
● 1967년 히토쓰바시대 사회학부 졸업
● 1977~85년 코메니우스학원대학 예비학교 교장
● 1985~92년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FIFC) 총주사
● 1992~96년 런던 일본인 전도 모임 활동
● 1996~2002년 후쿠오카·도쿄 등에서 목회
● 2002~2013년 세이가쿠인대 종합연구소 교수
● 2013~2016년 오사카에서 목회
● 2016년 3월 은퇴
도쿄=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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