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침공’. 영화 제목 같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다.
원래 개는 밖에서 키웠는데 ‘반려견’이란 벼슬을 얻으면서 이것들이 거실을 점령했다. 오냐 오냐 하는 사이, 아이 과자를 뺏어 먹고 곰 인형을 채간다. 자지러지게 울어 봐도 뛰는 개에 기는 아이. 놀이하듯 아이 옷을 물고 흔들고, 얼굴을 핥아댄다. 애 엄마는 태평이다. “좋아서 그래요.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엄마도 문제지만 아이가 더 문제다. 개는 바구니 물고 시장을 가는데, 아이는 이모·고모를 구별 못 하고, 밤새 잠도 안 자고 칭얼대 이웃에 민폐를 끼친다.
밤새 시달린 아빠가 졸면서 출근했다가 파김치로 귀가하면 아이는 기저귀를 적셔 놓고 울고 있고, 개들은 짖어대고, 애 엄마는 난장판 집 정리에 정신이 없다. ‘이참에 개를 확 처분해 버릴까….’ 그러나 그랬다간 애 엄마가 남편을 처분할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 앗! 이게 무슨 일?! 커다란 개가 아이한테 콧잔등을 얻어맞고 있다. 작은 개들은 깽깽깽 숨기 바쁘다. 다섯 살이 되면서 개들을 마치 졸개 다루듯 군기를 잡고, 그것을 셀카로 찍어서 편집도 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중국집 검색을 하고, 전화로 상담까지 한다.
“탕수육 시키면 뭐 뭐 줘요? 만두 싫어. 짜장면 소짜. 단무지 많이.”
비로소 무릎을 치며 깨닫는다. 누가 아이를 철없는 강아지라 하는가. 아이는 모두 천재다.
고향 친구와 밥을 먹다가 그 얘기를 하니 냉소와 조소가 한꺼번에 날아왔다.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천재? 월급쟁이로 아등바등하다가 나이 먹고 거울 보면 모두 한글(신조어)도 못 읽는 아재다. 천재가 축복 같지만 독이야. 좋은 나무일수록 빨리 베어져 가구가 되고, 가난한 천재들은 대개가 상위 포식자 밥이 된다. 사실은 나, 생존경쟁 험한 파도를 하도 맞아, 분노조절 회로에 에러가 발생해 엊그제 보건소에 갔었다. 갈아 끼울 부품이 있나 해서. 의사가 그런 것은 없고 되도록 화내지 말고 여행을 자주 가란다. 어떤 바보가 재미나서 화를 내는가. 어느 누가 여행을 갈 줄 몰라서 안 가는가. 정의다, 법치다 하더니 이제는 적과 아군이란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인데 생각이 다르다고 다 적인가. 우리는 대체 어느 줄에 서야 하나. 자네는 내 적인가, 아군인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갔다가, 잡목 뒤에 숨어 있는 꽃밭 하나를 발견했다. 꽃들이 만국기처럼 손을 흔들며 울적한 나그네를 가까이 불러 세웠다. 세상에는 충분히 예쁜데도 더 예뻐지려는 여인들이 다이어트다 뭐다 밥도 굶는다는데, 꽃들은 굶지도 땀을 빼지도 않고 눈부시게 날씬하고 우아하다. 그렇다고 졸부들 돈 자랑하듯 내 꽃술이 더 많아요, 내 향기가 싱그러워요 하지 않는다. 해바라기 밑동, 키가 반 뼘도 안 되는 꽃들도 절대로 일조권을 외치지 않는다. 유람선 소음이 시끄럽다고 변호사를 부르는 꽃도 없다. 비바람을 함께 맞고 해가 나면 젖은 몸을 함께 말린다. 형제처럼 뭉쳐 살면서 집시처럼 자유롭다. 지휘관도 팀장도 없다. 적도 아군도 없고 굳이 편을 가를 이유도 없다. 진정한 천재는 아이가 아니고 꽃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의 영광도 한 송이 꽃만 못하다’고 했을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혹시… 만에 하나…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저 장미가 꽃밭을 독차지하겠다고 한솥밥 먹던 친구들을 모두 죽이고 몰아낸다면? 꽃들이 일제히 까르르 웃었다. 장미 혼자 사는 꽃밭에 벌 나비도 안 오고 사람 발길도 끊길 텐데, 누가 그런 모두가 망하는 짓을 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계파’ ‘세력 확장’ ‘독점’ 모두 해롭다는 걸 꽃들이 가르쳐 주었다.
일주일쯤 지나 꽃을 만나러 강변에 다시 갔다가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처참하게 멸망해 가고 있었다. 굴착기가 꽃밭을 갈아엎는 중이었고, 쓰러져 가는 생명들을 여학생 몇이 애처롭게 보고 있었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곳이 개인 땅인지 나라 땅인지, 꽃밭을 없애고 무슨 구조물이 들어설지, 지금 그걸 알아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다만, 아름다운 꽃동산이 그렇게 빨리 폐허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 화사했던 꽃들이 흙더미에 떠밀려 목이 부러지고 꽃대가 으깨져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꽃은 의외로 약했다. 나는 그 참혹한 주검들 앞에 꿇어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세상에는 석별의 노래도 많은데 나는 하필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중얼거렸다. 불난 집에 부채질도 아니고, 나는 야속한 굴착기 기사보다 말을 앞뒤 계산 없이 뱉고 보는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정지 작업이 끝나자 꽃밭은 거짓말같이 반듯한 공터가 되었다. 비로소 제정신이 든 나는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밑동이 잘린 늙은 아까시나무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는 꽃나무 중에서 가장 많은 꽃을 거느렸던 그 꽃밭 최고참이었다. 무심코 내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가지가 다 잘린 그는 손이 없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그가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안 봐 주네요. 옛날에는 나무가 있으면 피해서 길을 냈는데 가차 없네요. 사실은 우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한번 퇴출의 대못이 박히면 끝장이라는 것을요. 그러나 진짜 승부는 끝나야 끝나는 겁니다. 오늘 비록 큰 꽃, 중간 꽃, 작은 꽃 모두 쓰러지고 고꾸라졌지만요, 새봄이 오면 보세요. 딱딱한 지표면을 뚫고, 아우성처럼 잡초들이 솟아오를 겁니다. 빨강, 노랑, 파랑 여러 꽃도 함께요. 우리는 절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아요. 새봄이 오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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