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五面楚歌 대한민국/[최보식 칼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바람아님 2019. 7. 27. 08:39

<시론>五面楚歌 대한민국

문화일보 2019.07.26. 12:20



舊韓末 닮아가는 위중한 안보
중·러 놀이터로 전락한 東海

北은 탄도미사일 발사 재개
외교 ‘동물의 왕국’ 법칙 지배

역대 대통령 모두 안보에 기여
文정부도 同盟의 가치 새겨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구한말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 간 치열한 패권경쟁의 희생양이었다.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 올 때 극심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로 급성장한 일본과, 전통적 강국인 중국 및 러시아의 대립은 필연적이었다. 일본은 열강들을 단시간에 따라잡기 위해 1880년 전체 예산의 19%를 지출한 국방예산을 1890년에는 31%로 대폭 늘리고 육군은 독일과 프랑스, 해군은 영국에서 배웠다. 이런 국방력을 바탕으로 청·일, 러·일 전쟁에 승리한 이후 1910년 한일 병합조약에 따라 우리의 주권을 빼앗았다.


이 같은 치욕을 겪은 지 109년 되는 2019년 7월 23일, 동해는 또 한 번 주변 열강의 침탈 현장이 됐다.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 5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 놀이터처럼 들락날락했고, 심지어 러시아 군용기는 영공을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침범했다.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두 번씩이나 들어와 놓고 되레 우리 공군에 대해 ‘공중 난동’ 운운하며 적반하장이다.


일본은 독도가 자국의 땅이라며 되레 러시아를 향해 “왜 우리 영공에 들어오느냐”고 항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미국은 독도가 엄연히 우리 땅이고 영공인데 “한·일이 잘 대응했다”고 일본을 끼워 넣었다. 이런 수모를 당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언급 한마디 없고, 다른 일에는 자주 소집하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지 않았다.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외치며 문을 닫아걸었던 무능했던 조정(朝廷)과 외교를 ‘도덕’으로 풀려는 문 정부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리한 주장일까.


불과 1년 반 전인 2017년 11월 동해에서는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시어도어 루스벨트호, 니미츠호 등 유례없이 3대의 항공모함이 동시에 전개돼 한국 해군과 일본 자위대와 함께 대규모 훈련을 벌였다. 항모 1척은 웬만한 국가의 공군력 전체와 맞먹는 70∼80대의 항공기를 탑재해 ‘떠다니는 군사기지’인데, 3척이나 들어왔으니 감히 중국과 러시아가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이제 한·미 연합훈련도 중단되고, 일본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니 그 빈틈을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 놔둘 리 없다.


진퇴양난의 상황을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미·중·일·러는 물론 문 정부가 그렇게 믿었던 북한에까지 외면당하는 ‘오면초가’ 상황이다. 중국은 우리의 ‘3불(不)’ 약속에도 사드를 국방백서에 기재하고, 36년 전 영공 침범을 이유로 KAL 007기를 격추시켜 탑승자 269명 전원을 사망케 한 러시아는 우리 영공을 버젓이 침범했다. 한·미·일 삼각 안보체계는 허물어졌고, 미사일 발사를 재개한 북한은 26일 문 대통령에 직접 경고를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TV 프로그램인 ‘동물의 왕국’을 즐겨봤다. 정글에선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법칙이 통용된다. 무리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맹수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그래서 동물들은 떼를 이뤄 생활한다. 정치와 외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을 압박해 한·미 동맹을 이뤄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 기본조약 체결과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 전 대통령은 ‘DJ-오부치 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경제동맹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 단계씩 격상시켰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 정부는 안보 없는 ‘평화와 정의’만 외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했는데, 북한만 바라보고 주변 4강의 전략 변화를 보지 못한 외교 실패의 후과(後果)는 혹독하다. 기원전 4세기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가능하면 나머지 다른 나라들은 함대를 갖지 못하게 하라.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최강국을 우방국으로 삼아라”고 했다. 죽창과 의병에 기대 나라를 지킬 순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던 문정인 특보를 주미 대사로 보내고, 외교·안보 장관들을 유임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위기감마저 볼 수 없는 지금,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줄 ‘동맹의 가치’가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이현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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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조선일보 2019.07.26. 03:17

 

우리 安保를 위한 사드 배치에 무차별 경제 보복 감행했던
중국에 끽소리 못했던 풍경과 너무 대조적
최보식 선임기자

우스키 게이코(臼杵敬子)씨를 만난 것은 4년 전 이맘때다. 대학 시절 좌파 운동권이었던 그녀는 젊은 날 프리랜서와 방송 작가를 했다. 1970년대 중반 일본인의 '기생(妓生) 관광' 취재를 위해 한국에 와서 역사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일본 TV 방송에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보도했다.

그 뒤 강제징용 사망자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하러 도쿄에 왔을 때 그녀는 일본의 책임을 확실히 하자는 취지로 '핫키리(ハッキリ)회'를 만들어 변호사 선임료와 체류 경비를 도왔다. 일본 의사당 앞에서 이들을 위해 보름간 노숙 시위도 벌였다. 이런 활동으로 징용·징병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약속을 받아냈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다.

"당초 일본 정부는 직접 배상금은 1엔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정부가 의료·복지 지원 사업비 명목으로 5억엔을 기금에 내놓았다. 일본 국민 모금액 5억7000만엔과 비슷한 액수였다. 사실상 일본 정부 돈이 할머니 배상금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하시모토 총리는 배상금을 받은 할머니들에게 사과 편지도 전달했다."

필리핀·대만·네덜란드 국적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돈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61명에 그쳤다.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단체가 "그 돈은 일본 정부가 법적·국제적 책임을 피해가려는 수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그동안 보조를 맞춰온 그녀를 향해 '일본 정부를 위해 할머니들을 회유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법무부에 '무(無)비자로 들어와 관광 목적 외의 활동을 한다'며 그녀를 신고해 2년간 입국 금지시켰다.

그 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배상 분쟁과 관련해 "일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우리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는 헌법 위배"라고 판결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과 다시 협상을 해야 했다. 미국이 중재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 타결'이라는 조건으로 '화해·치유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했다. 이번에도 정대협 등이 반대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재단을 해산시켰다.

올해 '만해평화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한국 입장에 쭉 서 왔던 일본 지식인이다. 소위 '우리 편'인 하루키 교수조차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전임 대통령이 한 약속은 좀 부족해도 계승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이게 파기되자 일본에서 한국을 불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작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은 관계 파탄의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격이었다.

우리는 우리 위주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만, 일본도 자신의 위치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일본 정부는 더 겸허해야" "칼 찬 순사"라고 꾸짖어도 일본이 크게 반박하지 않으니 우리가 이긴 줄 알았을 것이다. 우리의 급소를 누르는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낼 줄은 현 정권의 머리로는 상상도 안 됐을 것이다.

일본 재계의 한 인사는 "G20 회의에서 충분히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대통령은 그걸 이해 못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주빈국인 일본 아베 총리의 문 대통령 접대는 말없이 악수하는 걸로 끝났다. 딱 8초였다. 더 이상 상대해봐야 바뀔 게 없다고 판단되면 일본은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게 최악의 관계다.

하지만 대통령을 필두로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이순신 12척 배" "죽창가" "쫄지 말자" 등으로 대일 항쟁의 북을 치고 있다. 자신의 무능과 무대책으로 자초해놓고 너무 당당하게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안보를 위한 사드 배치에 무차별 경제 보복을 감행했던 중국에 대해 끽소리 못했던 풍경과 너무 대조적이다. 어쨌든 TV 방송에는 '불매운동' 소식이 넘쳐난다. 이런 기세에 놀라 일본 정부가 겁먹을까. 불매운동은 시간이 갈수록 유통업과 여행업, 자영업에 종사하는 우리 서민에게 더 심한 고통을 줄 것이다. 국내 경기 불황은 더 악화될 게 틀림없다. 일본이 똑같이 불매운동으로 나올 때 어떤 상황이 될까.

물론 과거 식민지 지배에 관한 일본 정부의 인식과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이는 우리가 고칠 수 없고 일본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 해도 한국의 전후(戰後) 발전 과정에서 일본은 좋은 조력자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핵심 가치도 공유하고 있다. 과거 시절의 '유물'이 결코 이런 가치를 포기할 만큼 중요할 순 없다.

이 시점에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자 경고사격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최보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