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미국은 '통북소남(通北疎南)'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남한은..
매경이코노미 2019.08.19. 08:06“바보는 클수록 더 큰 바보가 된다고 했는데 바로 남조선 당국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한미훈련 명칭을 바꿨다는데) 똥을 꼿꼿하게 싸서 꽃보자기로 감싼다고 해 악취가 안 날 것 같은가.”
“지난번에 진행된 우리 군대의 위력시위 사격을 놓고 사거리 하나 제대로 판정 못해 쩔쩔매며 만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데서 교훈을 찾는 대신 저들이 삐칠 일도 아닌데 쫄딱 나서서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으로 가관.”
“청와대의 이런 작태가 남조선 국민들의 눈에는 안보를 제대로 챙기려는 주인으로 비칠지는 몰라도 우리 눈에는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우리를 향해 쏟아놓은 말들이다.
‘똥’ ‘바보’ ‘웃음거리’ ‘개’. 이런 단어는 국가 간에는 물론이고 개인끼리조차 쓸 수 없는 단어다.
최근 북한이 내뱉은 말은 과거의 발언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과거에도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이 실시될 즈음이면 어김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거침없는 위협을 가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대표적이다. 형법상 정의를 따르면, 북한이 과거 우리에게 한 말은 협박 행위에 해당한다.
협박 개념 정의에는 ‘비아냥’이나 ‘조소’라는 단어는 빠져 있다. ‘비아냥거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얄밉게 빈정거리며 자꾸 놀리다’로 돼 있다. 비아냥과 협박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적용하면 북한은 과거에는 협박했지만 지금은 조소하고 빈정거리며 놀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왜 이런 식으로 태도를 바꿨을까?
8월 12일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북한 발언에 대해 “북한이 가끔 정말 절실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애들 문자로 ‘약을 올린다’ ”라고 말했다. 북한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가 지나친 낙관론으로 북한 의도를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낙관적 분석이 위험하다는 것과 관련해 주목할 점이 있다. 북한이 대남 위협을 실제적인 힘으로 보여주고 그 이후 우리를 ‘비아냥’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힘을 과시하기보다 주로 언어적 협박을 통해 위협했다. 지금은 북한 스스로가 우리를 겨냥한다고 밝힌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구체적인 힘을 보여주고, 그 이후 우리를 조롱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북한의 태도 변화 기저에 있는 심리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지난 8월 6일 “군사적 능력은 우리가 북한보다 훨씬 더 앞서고 있다”고 말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급이다. 재래식 무기만 보면 우리가 북한보다 앞선다. 문제는 북한은 핵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핵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는 없다. 북한이 습관적으로 발사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준 무기는 우리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 결국 북한은 무력 차원에서 우리를 얕볼 수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북한은 지금 자신들이 힘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실감하도록, 마음대로 미사일도 쏘고 조롱하는 말을 내뱉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북한은 이제 미국과 곧바로 접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존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손을 내밀다, 미국과 직접적인 대화채널이 확보되면 곧바로 우리를 ‘왕따’시키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북한이 한 번도 ‘통미봉남’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북한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에게 ‘세 쪽짜리 아름다운’ 친서를 보냈다”면서 “김정은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한 ‘작은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또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터무니없고 비용이 많이 드는(ridiculous and expensive) 훈련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었다”면서 “나도 (연합훈련이) 마음에 든 적이 없다. 돈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주장을 요악하면,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 안 되기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한미연합훈련이 싫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가히 미북 간의 밀월시대, 미국이 북한과는 통하고 남한은 소외시킨다는 통북소남(通北疎南) 시대가 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 입에서 한미연합훈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옴으로써 미북 간 ‘공조’와 트럼프·김정은 간의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에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밀월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유대감을 갖게 됐다고 판단해 우리를 따돌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따돌림이면 상관없다. 만일 북한이 우리를 길들이려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북한이 남한 길들이기에 돌입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북한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지난 8월 11일 “군사연습을 아예 걷어치우든지, 군사연습을 한 데 대해 하다못해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 하기 전에는 북남 사이의 접촉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앞으로 대화에로 향한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런 대화는 조미(북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절박하게 원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이용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동시에 자신들과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친절히’ 알려주는 언급이다. 미북 간 대화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 역시 북한에 잘 보이면 여지를 주겠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식의 언급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마음 놓고 도발하고 조롱하며 마음대로 주무르려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처럼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 도발을 억제하기란, 최소한 미국 대선 전까지는 힘들 것이다. 미국 대선이 지나면 상황이 조금은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북한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재선에 실패하면 그때는 상황이 완전히 바뀔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우리에게 지나친 방위비를 요구하는 ‘습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트럼프는 북한과 잘 통하고 우리는 소외시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우리에게 높은 방위비를 물리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이런 트럼프 전략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 우리 힘으로만 북한에 대항하느냐 아니면 트럼프 요구를 들어주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에 성공한다면 이런 고민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에 만족하고 적당한 선에서 북한과 타협한다면 이런 고민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즉, 트럼프가 핵보유국으로서의 북한을 인정함과 동시에 북한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면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의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으로서는 후자의 시나리오를 바랄 것이다. 여기에 일본마저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추구하면서 과거 한반도 강점에 대한 배상금을 북한에 제공할 경우 북한은 우리 존재 자체를 무시하며 깔아뭉개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한다.
통미봉남, 통북소남 시대가 누구에 의해 조성됐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이라도 전문적인 외교, 합리적인 외교를 통해 이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2호 (2019.08.21~2019.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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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 칼럼] 김정은이 문재인을 조롱하는 이유
노컷뉴스 2019.08.19. 11:24그동안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했지만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북아 패권 질서에서 북한이 독립변수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남한을 압박하면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일관된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표면적으로는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라지만 배경과 목적은 다른데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의 도움을 받아 미국과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이제 그것으로 문재인의 역할은 끝났다고 보는 것 같다. 문재인 없이도 언제든 트럼프와 친서를 교환할 수 있는 관계까지 나갔다. 그런가하면 김정은은 북미 대화 국면에서 드러난 문재인의 한계를 파악한 것 같다. 문재인의 남북관계 개선의지의 진정성은 믿지만 미국의 허락 또는 용인 내지 묵인 없이는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김정은이 문재인에게 보인 잠시 동안의 유화국면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북한의 조롱 섞인 비난의 배후를 분석해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 요구는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라 선대 때부터 있어온 일관된 주장이다. 정밀유도탄과 전자기임펄스탄 등 첨단 신무기 도입과 개발을 위한 '국방중기계획'의 철회 요구도 결국 남한이 군사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데도 선대의 유업인 핵무기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손자 김정은에 이르러 성공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다음 행보는 남한과의 공동번영과 평화경제가 아닌 것 같다. 주변 4강으로부터 남한을 고립시키는 일이다. 이 문제는 뒤에 설명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의 외교정책 기본목표다. 대한민국을 고립화하여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북한 주도로 통일시키기 위한 결정적 상황을 조성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김정은은 때마침 불안전한 동북아 정세 속에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앞세워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서 4강 앞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게다가 고효율의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까지 더해 트럼프, 시진핑, 푸틴도 김정은을 필요로 하게 됐다. 하물며 일본의 아베까지도 김정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정은과의 공동 번영을 꿈꾸던 문재인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동북아 질서의 재편이 시작된 시점에 핵무기로 무장한 김정은이 가세한 셈이 됐다. 그러니 셈법이 달라져야 한다. 김정은과의 평화 공존을 위한 노력은 계속 되어야하지만 그 역시 동북아 4강과 마찬가지로 경쟁자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100여 년 전의 한반도 역사가 주는 교훈은 경제와 군사 모두가 상대 국가보다 강하거나 대등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주변 4강은 100여 년 전 보다 훨씬 강하다. 대한민국도 강해졌지만 4강은 우리가 강해진 것보다 더 강해졌다. 북한은 핵 보유국가가 되었다.
이 같은 흐름을 정리해 보면 김정은이 문재인을 조롱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남한이 군사적으로 강해지면 자신들의 외교정책 기본 목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남한의 군사적 무장을 경계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담보로 동북아 질서의 한 축이 되고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음으로써 남한을 압도하고 선대 유업을 달성한다는 꿈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을 조롱하는 김정은의 자만심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았으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CBS노컷뉴스 조중의 기자] jij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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