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희 ‘세한도’(부분) 1844년, 종이에 먹, 24.7×108.2cm, 국보 제80호, 개인 소장 |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겨우겨우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공부를 포기할 결심을 하고 가진 책을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자기 책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공부를
포기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계와 담쌓고 살며 2년을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틈만 나면 책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무감에서 논문을 쓰고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책을 보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젠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2년이라는 공백도 컸지만 돌아온 탕자를 바라보듯 하는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는 더욱 힘들었다. 쟤 뭐야? 공부 그만두지 않았어? 모두들 그렇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선배가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힘들어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큰 목소리로 격려해 줬다. 아직 무명이었던 나의 글재주를
아껴 잡지사에 연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그때의 감사함을 어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알 수 있는 것
1844년의 일이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에 유배온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중국 연경(燕京)에서 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왔다. 역관으로 공무를 수행하러 다녀
오는 길에 스승의 부탁을 받고 책을 사왔다. 나라의 명을 받고 떠나는 길인 만큼 궁궐에서 사오라는 물건도 많았을 텐데 제자는
‘힘 없는’ 스승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 1년 전에도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槀)’를 구해 제주도로 보내주었
다. 모두 연경에서조차 구하기 힘든 책들이었다. 김정희는 감격했다. 당시 제주도로 유배당하는 것은 ‘정치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상적은 ‘끈 떨어진 갓’이나 다름없는 ‘쓸모없는’ 스승을 향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김정희는 제자의 마음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래서 붓을 들어 완성한 작품이 ‘세한도’다.
‘세한도(歲寒圖)’는 제목과 그림, 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쪽에는 ‘세한도’라는 제목을 적고, 중앙에는 그림을, 발문에는
가로 세로 줄을 쳐서 300개의 네모 칸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적었다. 애초에 김정희가 의도한 그림은 여기까지였
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세한도’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선 그림부터 살펴보자.
그림은 소박한 초가집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각각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단순한 구도다. 도입부는 예서체로 쓴 ‘세한도(歲
寒圖)’와 행서체로 쓴 ‘우선(藕船)! 이것을 감상해보게(是賞) 완당(阮堂)’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다.
제목을 따라 가던 눈길이 ‘정희(正喜)’라는 붉은 도장에 잠깐 멈추려는 순간, 허공 중에 떠 있는 노송(老松)의 가지와 만나게 된
다. 가느다란 줄기를 보고 별 볼 일 없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근원을 찾아가보니 우람한 노송이다. 노송 곁에는 이제 막 물이
오른 푸릇푸릇한 청송(靑松)이 꿋꿋하게 서 있다. 노송이 김정희라면 청송은 이상적이다. 담백한 형태의 초가집을 사이에 두고
청송과 노송 건너편에는 역시 두 그루의 잣나무(柏)가 서 있다.(나무박사 강판권 교수는 잣나무를 측백나무라고 했다.) 잣나무가
있어 그림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잣나무를 그려 넣은 이유가 단순히 소나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선택한 이유
김정희가 ‘세한도’에 특별하게 소나무와 잣나무를 선택해서 그린 것은 이유가 있어서이다. 제자 이상적의 ‘의리’를 칭찬하기
위해 ‘공자(孔子)’ ‘자한(子罕)’ 27장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
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子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모든 나무들이 짙은 녹색인
한여름에는 알 수 없다. 어떤 나무가 싱싱하고 늦게 시드는지를. 추위가 닥쳐봐야 알 수 있다. 여전히 변치 않고 푸른 나무가
소나무와 잣나무인 것을. 그게 어찌 나무만의 문제겠는가.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잘나갈 때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사람
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본색이 드러난다. 이 그림은 권세와 이익을 좇아다니는 속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올곧은 사람이 있음을 알고 반가워서 그린 작품이다. 그러니 그림 속의 소나무는 실제 소나무를 닮게 그린 것이 아니다. 이상한
각도로 왜곡되게 그린 집도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했던 제주도 대정리에 있는 실제 집이 아니다. 모두 김정희의 마음을 형상화한
사의화(寫意畵)다. 그러니 대정리에 가더라도 ‘세한도’ 속의 집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마시라.
그림 속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쓸쓸한 구도는 선례가 없는 게 아니다. 원나라 때의 남종문인화가 예찬(倪瓚
·1301~1374)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먹에 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숯처럼 진한 먹으로 그린 김정희의 ‘세한도’ 속에는
유배당한 자의 얼어붙은 추위가 짓이겨져 있다. 예찬의 쓸쓸함이 결벽증에서 기인한다면 김정희의 쓸쓸함은 외로움과 분노에서
출발한다. 오른쪽 아래에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長毋相忘)’는 인장을 찍어 놓은 것만 봐도 제자를 향한 스승의 마음이 각별
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적송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스승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눈물이 흘러내림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감격했다. 그는 스승에게 받은
사랑을 단순히 감격의 눈물로 끝내지 않았다. 10월에 동지사(冬至使) 일행을 수행하는 역관으로 연경에 갈 때 ‘세한도’를 가져갔
다. 그곳에서 청나라 학자들에게 스승의 작품을 보여준 뒤 16명의 찬시를 받아 그림에 합장했다. 말하자면 스승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외로운 고도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스승에게 전송해 준 셈이다.
그 후 김석준,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의 글이 붙어 현재의 두루마리 그림이 완성되었다. 평범한 그림 한 장이 사제 간의 정을
이어주는 차원을 넘어 한·중(韓中) 간의 문화 교류의 메신저가 되었다. 먼 훗날의 얘기지만, 근대 최고의 컬렉터였던 손재형(孫
在馨)이 ‘세한도’의 소장가였던 일본인 후지츠카 지카시(藤塚鄰)에게 작품을 넘겨받은 사건에 이르게 되면 ‘세한도’는 한·중·일
(韓中日) 세 나라의 ‘핫 이슈’로 부상하게 된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세한도’를 보러 갔다. ‘중국사행을 다녀온 화가들’이란 기획전에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는 2012년 1월 15일까지 계속된다.) 2006년 ‘추사 김정희’ 특별전 때 보고 5년 만이었다. 황량한 겨울 추위 때문이었을
까. ‘세한도’를 보는 느낌은 각별했다. 5년 동안 내가 겪은 삶의 추위가 새삼 ‘세한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노송과 청송이 서로 의지하면서 견딘 167번의 겨울을 생각해봤다. 나의 소나무에 찬바람이 불 때 슬며시 다가와
서 격려해 주었던 든든한 적송 같은 선배를 생각해 봤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소나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 |
"추사 김정희에 관한 글은 이블로그에도 여러편이 있다 그중에서 세한도와 관련한 글 몇편을 링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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