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2.20. 23:38
한국 같은 中規模 국가는 지도자가 헛것 보는 순간 지도에서 사라져
국가는 어떻게 지도에서 사라지는가. 역사 연구의 출발은 바로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브레진스키는 폴란드 출신 정치학자로 조국 폴란드가 강대국 간 밀약(密約)에 의해 두 번 망하는 과정을 지켜봤던 사람이다. 폴란드는 1939년 히틀러-스탈린 협정으로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됐고, 1945년 전승국(戰勝國) 간 얄타협정 결과 소련 위성국(衛星國) 처지로 굴러 떨어졌다. 훗날 미국 국적을 얻어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입신(立身)한 그는 두 차례의 망국(亡國) 체험을 통해 일체의 환상(幻想) 없이 '공산주의의 본질' '강대국의 본심(本心)' '약소국의 한계'를 꿰뚫어보는 눈을 갖게 됐다.
브레진스키는 '왜 국가는 몰락하는가'라는 물음에 '나라를 자살로 몰고 가는 지도자의 어리석은 국가경영(statecraft)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운영을 세 달밖에 지켜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그가 미국에 던진 경고에는 예언자의 목소리 같은 울림이 있다. "세계 질서는 '힘의 질서'와 '법의 질서'의 결합(結合)이다. 미국이 '힘과 법' 양면에서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면 어느 나라의 존경도 받지 못한다. 미국이 (자유를 향한) 이상 실현 노력을 멈추는 순간 미국은 쇠퇴한다."
브레진스키의 이런 통찰보다 더 지금 우리 가슴에 와닿는 것은 그가 스스로를 위로(慰勞)하는 대목이다. "다행인 것은 국가를 자살로 몰고 가는 우둔(愚鈍)한 대통령도 임기가 4년이란 사실이다. 길어야 8년이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가 없다. 미국은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나라가 망하고 분단되고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경제적 파산(破産) 선고까지 받았던 국가다. 한국 같은 중규모(中規模) 국가는 지도자가 헛것을 보고 나라가 마주한 내외(內外) 현실을 착각하는 순간 몰락한다. 현 정권의 남은 임기는 한국을 구제불능(救濟不能) 국가로 만드는 데 넉넉한 시간이다.
국가 지도자에겐 두 개의 거울이 필요하다. 하나는 나라의 과거를 돌아보고 국가 진로(進路)를 조정하는 '역사의 거울'이다. 다른 하나는 나라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통계의 거울'이다. 120년 전 조선이 망할 때 동북아의 국력(國力) 순위는 일본·청(淸)·조선 순(順)이었다. 현재는 중국·일본·한국 순이다. 일본과 중국이 자리를 바꿨다. 국가 안보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국가 간 상대 국력의 차이다. 중국 GDP는 한국의 12배, 일본은 3배다. 조선이 망하던 때보다 안전해졌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김일성을 교주(敎主)로 모시는 북한의 핵 보유라는 위험이 더해졌다. 한국이 동북아 세력 균형 유지와 북한 핵 공갈(恐喝) 억지에 활용할 안보 자산(資産)은 미국의 존재다. 안보 전략의 뼈대는 적 진영을 분열시키고 동맹국과 우방국을 결집(結集)시키는 것이다. 현 정권은 정반대로 한다. 대통령은 핵무기 위협에 재래식(在來式) 전력으로 맞서 성공한 사례를 하나라도 국민에게 제시해 보라.
이 정권에는 '통계의 거울'도 없다. 대통령은 취임 후 17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곤 며칠 후 암세포가 아니라 암 환자를 겨냥한 18번째 대책을 발표했다. 파업·태업·직장 폐쇄로 근로자가 일을 못 하는 근로손실 일수(日數)는 한국이 일본보다 172배 많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1962년 이후 파업이 없다. 현대차는 20년 동안 4년을 빼곤 해마다 파업을 해왔다. 그런 노조가 머지않아 삼성전자도 장악할 거라고 한다. 그날은 한국 제조업이 문을 닫는 날이다.
1990년대 전후(前後) 독일 경제는 중병(重病)에 시달렸다. 온갖 처방전이 쏟아졌다. 그때 도이치 은행 총재가 일갈(一喝)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예산이 새는 구멍을 막아야 한다." 독일은 그 방향에서 탈출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현 정권은 정상 치료와 쓴 약은 마다하고 설탕물과 단방약(單方藥)만 찾는다. 정권 안에 돌팔이 경제 전문가만 득실댄다.
브레진스키는 우둔한 지도자와 우매(愚昧)한 국민이 한패가 되는 사태를 가장 경계했다. 미국 군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미국 젊은이들의 85%가 세계지도에서 두 나라 위치를 찾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그는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라는 마지막 저서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두 번째 기회는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세 번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몇 번째 기회인가.
**각주:
브레진스키(1928년 3월 28일 ~ 2017년 5월 26일)는 폴란드 출신의 미국의 정치학자로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을 맡았다.
후에 그는 워싱턴 D. C.에서 전략과 국제학 센터와 함께 제휴하였다.
그는 자신이 상세히 설명한 자신의 정치적 믿음과 목표는 물론 자신의 철학을 통하여 몇몇의 저서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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