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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은 설국.. 해변엔 수줍은 꽃망울 매화향

바람아님 2014. 2. 17. 09:42
   겨울과 봄의 공존. 아마도 이즈음 제주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운 사람, 이제 겨우 코끝을 내밀기 시작한 봄 내음이 그리운 사람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지가 제주다. 우리 땅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제주도는 지금 따스하고 보드라운 봄기운이 완연하다. 바닷가 마을에는 벌써 봄의 전령사인 매화가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발고도 1950m로, 한반도의 남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한라산에는 2월에도 많은 눈이 내리고, 3월 초까지 설경을 즐길 수 있다.

#한라산 영실의 눈부신 설경

한라산의 등산 코스는 어리목, 영실, 성판악, 관음사, 돈내코, 어승생악 등이 있다. 이 중 겨울 설경이 가장 빼어난 코스로 꼽히는 게 영실(靈室) 이다.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백록담 봉우리 남벽의 설경을 바로 영실 산행에서 만날 수 있다. 영실은 한라산 서남쪽에 자리한 계곡으로, 해발 1400∼1600m 지점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왕복 7.4㎞인 영실 코스는 가파른 구간과 완만한 구간이 적당히 섞여 있어 초심자도 중간중간 쉬어 가며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제주에 도착할 날 바닷가에는 하루 종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지만, 한라산 중턱 위로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많은 눈이 쌓였다. 다음 날 아침 영실에서 출발해 병풍바위를 거쳐 윗세오름에 올랐다. 해발 1300m쯤 되는 영실 산행로의 초입은 평탄한 흙길이다. 눈길을 헤치고 20분쯤 걸으면 가파른 능선이 시작된다. 병풍바위를 넘어가는 이 능선을 통과하는데 40분 정도 걸리는데, 제법 숨이 차다. 영실 산행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시야가 툭 트이는 이 병풍바위 능선에서 산 아래 풍경을 조망하는 것인데, 이날은 안개가 워낙 짙어 바로 건너편 바위도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한라산 서남쪽 계곡인 영실을 거쳐 선작지왓(해발 1700m)에 오르면 이같이 멋진 설경이 펼쳐진다. 눈 덮인 백록담 봉우리의 남벽과 선작지왓의 설원, 그리고 파란 하늘이 빚어내는 이 풍경은 겨울 한라산 최고의 절경으로 꼽힌다.

1600m고지를 넘어 이제 다시 평탄한 지형인 선잣지왓으로 접어든다. 선작지왓은 제주도 방언으로 '돌이 서 있는 밭'이란 뜻으로, 크고 작은 작지(자갈의 제주 방언)가 많아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해발 1700m에 가까운 선잣지왓에 접어드는 순간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백록담의 남벽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장딴지까지 푹푹 들어갈 정도로 겨우내 내린 눈이 쌓여 있는 선잣지왓 끝에 우뚝 서 있는 하얀 백록담 봉우리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빚어내는 풍광은 말그대로 황홀경이다. 등산객들은 "멋있다"는 찬사를 연발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한라산 영실의 병풍바위

#눈밭을 자유롭게 다니는 스노 슈잉

한라산에서는 색다른 겨울 레저인 '스노 슈잉(Snow shoeing)도 즐길 수 있다. 스노 슈잉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스키, 스노보드와 함께 겨울 인기 스포츠로 꼽힌다. 제주신라호텔이 최근 선보인 스노 슈즈는 가볍고 견고한 알루미늄 틀이 있어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의 눈길에서도 눈에 빠지지 않고 눈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준다. 또 알루미늄 틀이 주변의 눈을 눌러 신발에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준다. 예전에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우리나라 산간지방에서 사용하던 설피와 모양과 기능이 비슷하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스노 슈잉은 평균 속도로 걸을 때 시간당 400∼500칼로리를 소모하는 등 운동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노 슈잉은 2월 말까지 매주 수, 금요일에 한라산 성판악에서 진행된다.


눈길에서도 편안히 걸을 수 있는 스노 슈잉.
제주신라호텔 제공


#산 아래에는 매화 향기 가득

한라산에서는 지금도 눈꽃 산행을 즐길 수 있지만, 제주 바닷가 저지대에는 일찌감치 봄이 상륙해 있다. 수월봉에서 멀지 않은 제주시 한림읍의 한림공원의 매화정원에서는 매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가지마다 순백의 매화가 매달려 있고, 가지가 축축 늘어진 80년 묵은 수양백매·수양 홍매도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 매화축제도 8일부터 시작돼 3월 2일까지 계속된다.


한림공원에 만개한 매화.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노리매공원'에서도 매화축제가 시작돼 3월9일까지 이어진다. 이중섭 미술관의 정원에도 매화와 유채 등 봄꽃이 앞다퉈 피고 있다. 개화시기가 조금 늦는 서귀포시 '휴애리공원', 칠십리 시공원의 매화에도 꽃망울을 맺혔고, 제주 해변 곳곳에는 유채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제주에는 지금 이같이 봄의 기운이 번져가고 있다.

제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지역번호:064)=수월봉 탐방을 하려면 트레킹화를 준비해야 한다. 밀물 때는 절리 위로 파도가 들이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월봉 남단인 해녀의집 위에 '탐방로'라는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수월봉 정상 입구에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해설사 사무실이 있다. 눈이 내리면 한라산 영실 매표소에서 휴계소에 이르는 2.4㎞ 구간은 체인이 없으면 차량출입이 통제된다. 이 구간에 4명 기준 편도 1만원인 '셔틀 택시'가 운행된다. 영실 눈길 산행에 아이젠은 필수품이고, 물과 초코바·사탕 등도 준비하는 게 좋다. 제주 신라호텔(www.shilla.net/jeju·735-5114)의 스노슈잉 프로그램의 1인 참가비는 2만원. 호텔에서 배낭·스틱·아이젠·장갑을 무료로 대여하고 있으며, 트레킹화와 아웃도어 재킷도 빌릴 수 있다. 산행 후에는 야외 온수풀과 노천 스파에서 피로를 풀수 있다. 패키지 가격은 1박에 33만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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