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 푸른 소나무 울타리

바람아님 2014. 5. 9. 08:21

(출처-조선일보 2014.05.09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푸른 소나무 울타리

짙푸름이 창 앞까지 이어져
그윽한 솔숲을 이루네.
산들바람 불어오면 빗소리를 내며
뜰에 온통 시원함을 뿌리네.
문 앞에서 구불구불 울타리로 굽히고 있어도
솟구쳐 하늘로 오르려는 희망 잊은 적 없네.
도심 쪽을 가로막아
뽀얀 연기를 멀리 몰아내지만
가지 사이는 툭 트여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네.
호젓한 새는 병풍 속 그림으로 알련마는
이상도 해라. 고운 노래 때때로 들려주네.

[가슴으로 읽는 한시] 푸른 소나무 울타리靑松障

翠黛連窓窈作林(취대연창요작림)
小風吹雨一庭陰(소풍취우일정음)
縱成屈曲當前障(종성굴곡당전장)
不忘升騰向上心(불망승등향상심)
闤闠敎遮煙色遠(환궤교차연색원)
枝柯偸豁月光侵(지가투활월광침)
幽禽認是屛間畵(유금인시병간화)
怪底時時送好音(괴저시시송호음)


/이철원
정조 때의 명재상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혼인한 직후 지었다. 
서울역 뒤 처가에 머물 때였다. 
그 집에는 노송을 구부려 만든 생울타리, 곧 취병(翠屛)이 있었다. 
울타리는 작은 솔숲을 이뤄 바람이 조금 불어도 쏴 소리를 내며 온 집 안에 시원함을 선사한다. 
도성 안의 붉은 먼지를 막을 만큼 빽빽하지만 가지 틈은 넓어 달빛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하지만 그 멋진 풍경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소나무를 비틀고 구부려 만들어서다. 
그래도 굽은 저 소나무는 하늘로 솟구쳐 쭉쭉 뻗으려는 본성을 결코 잊지 않았다. 
지금은 몸을 굽히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하늘을 향해 솟구치리라. 
나 아직 젊으니 그것을 기억해라!



<각주> 취병 (翠屛)[취ː병] : [명사] 꽃나무의 가지를 이리저리 틀어서 문이나 병풍 모양으로 만든 물건